전투기 없는 한국 공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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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호 31면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우리 언론의 최대 화두는 육·해·공군의 합동성과 전투형 군대였다. 이에 못지않게 즉각적인 대응수단으로 떠오른 것이 공군력이었고, 그 가운데 ‘스텔스’라는 용어가 눈에 두드러졌다. 공군력의 핵심인 스텔스 전투기 능력은 북한에 직접적인 위협을 줄 수 있고, 그들의 추가도발 의지를 꺾는 중요한 군사적 대응수단이 될 수 있다. 더욱이 중국의 스텔스 전투기 개발과 관련한 보도들 역시 공군 전투력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데 한몫을 더해 줬다.

그러면 한국군의 미래 전투기 획득에 관한 현실은 어떠한가? 1990년 걸프전 이후 세계 각국은 공군력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지만, 한국군에선 탁상공론에 불과한 게 사실이다. 미래 전투기 획득과 공군력 증강은 항상 한계에 부닥쳐 왔다. 한국군이 육군 위주로 창설되고 발전된 데다 ‘해·공군은 미국의 지원에 의존한다’는 한·미 동맹에 기초한 안보정책이 기저를 이루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기적이고 고가인 전투기 구입이나 개발은 제한된 예산 안에서 추진돼 왔다. 어찌어찌 해서 국회의 예산안 심의단계까지 간다 해도 전투기 획득예산은 늘 삭감 또는 연기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지난해 12월 ‘2011년 국회 예산심의’에서 차기전투기(FX) 사업예산이 누락된 것도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궁극적으로 전투기를 운용해야 할 공군의 의지와 노력이 부족했던 점도 지나칠 수 없다.

현재 한국 공군의 스텔스기와 같은 첨단 전투력 확보에 대한 전망은 매우 비관적이다. 대북 억제력의 주력이 될 한국 공군의 FX사업은 2000년 중반부터 추진되고 있으나 도입 계획을 세워 놓은 120대의 F-15K 가운데 1, 2차 사업을 통해 60대만 도입됐거나 도입이 확정된 상태다. 나머지 60대를 획득할 3차 사업은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다. 또한 30∼40년 이상 노후된 F-5기와 F-4기의 퇴역은 2010년 이전 시작됐으나 이를 보충하기 위한 ‘한국형 전투기 개발사업’은 2012년에나 본격적인 개발 여부가 결정된다고 한다. 그때 가서 결정된들 한국 공군에 인도될 시기는 2020년 이후가 될 전망이다. 그 사이의 전투기 공백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대안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과거 경험으로 볼 때 전투기 구매·개발과 같은 장기적이고 거금의 예산이 필요한 무기획득 계획이 또다시 연기되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미국 랜드연구소에 의하면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한국 공군의 적정한 전투기 보유 대수는 500∼600대라고 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국방부의 공식 입장은 420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대책 없이 간다면 2020년께 최악의 경우 공군의 전투기 보유 대수는 300대 이하로 감소할 가능성까지 있다. 그럴 경우 한국 공군기지에 배치된 3∼4개 비행대대는 1∼2개 대대 규모로 줄어들고, 전투기 없는 공군기지가 제법 많이 생길 수 있다. 그때 가서 스텔스기를 보유한 주변국과 북한의 위협에 맞서 갑자기 공군력을 증강해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전투기 없는 공군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오직 하나뿐이다. 정치지도자의 단호한 정치적 의지(political will)가 열쇠일 뿐이다. 유사시 해·공군은 미국이 지원한다는 한·미 동맹의 안보정책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자주국방 관점에서 수십 년 앞을 내다보고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 이는 해양과 대륙으로부터 침략을 받은 임진왜란·병자호란과 같은 역사적인 사례를 봐도 분명하다. 유비무환이 아니면 무비유환이었음을 우리 역사는 거듭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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