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78인이 모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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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국립국악원에 마련된 ‘국악 명인의 전당’에 올라간 명인들의 사진 패널.


심소(心韶) 김천흥(1909~2007)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무동(舞童)’으로 불렸다. 순종(純宗) 황제의 50세 경축연에서 춤 췄을 때 그는 14세였다. 이후 일생을 궁중 무용의 복원·재현에 바쳤다. 마지막 무동은 마지막까지 춤을 췄다. 90세가 넘어서도 무대에 섰고, 95세까지 후학을 길렀다. 해맑은 얼굴과 가뿐한 몸짓엔 단아함과 고고함이 오래 머물렀다.

 가농(茄濃) 김준현(1918~61)의 피리 소리는 사람의 목소리와 구분이 쉽지 않았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소리는 청량했고, 노래를 반주할 때면 악기가 노래를 했다. 정해진 가락 대신 즉흥적으로 음악을 그렸으며 여러 악기를 위한 합주곡 ‘평조회상(平調會相)’을 작은 피리 하나로 소화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의 제자들은 지금까지도 곳곳에 뻗어 활동 중이다.

춤추는 이는 승무·학춤 등에 능했던 한영숙.

 벽사(碧史) 한영숙(1920~89)은 춤과 함께 태어났다. 무용가 최승희의 스승으로 알려진 명무(名舞) 한성준의 손녀다. 승무·학춤·살풀이춤 등을 섭렵했고 한국 민속무용의 전성기를 꽃 피웠다. “마흔이 넘으니 춤의 중심이 생기고 쉰이 넘으니 춤사위가 무르익고 예순을 넘기니 춤의 철학이 생기더라”는 말은 춤과 함께 피고 진 벽사의 인생을 말해준다.

 이처럼 전통과 현대를 이은 78명의 기록이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우면당에 모였다. 우면당 1층 로비에 지난 4일 문을 연 ‘명인의 전당’이다. 1940년대 이전 출생자 중 일가를 이루고 세상을 떠난 국악인에 관한 전시실이다. 국악 명인 박물관 개관은 처음이다. 국악 명예의 전당인 셈이다.

 심소가 궁중 무용 ‘춘앵전’을 출 때 입었던 옷, 가농의 피리관대, 벽사의 승무의상 등 유물 30여 점이 전시된다. 가야금 명인 김죽파(1911~89) 선생의 일기장도 있다. 하루하루를 시간 단위로 기록하다시피 했다.

 “아무도 집에 오지 않다가 오후 세 시에 재숙이 와서 공부하고 가고 나는 떡국을 끓여 먹었다”는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현재 이화여대 교수인 가야금 연주자 문재숙(58)씨가 기증한 유품이다. 김죽파 선생은 가야금 산조의 창시자인 김창조의 손녀. 김창조-김죽파-문재숙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엿볼 수 있다.

 경기명창 안비취(1926~97)가 ‘회심곡’을 부르며 연주했던 꽹과리, 민속악 거목인 지영희(1909~80)가 역사적인 해금 산조를 완성할 때 썼던 해금 등이 전시된다. 국립국악원 국악진흥과의 송상혁 학예연구사는 “전시된 78명은 각 분야에서 자신의 유파를 남기거나 일가를 이룬 이들이다. 시간이 흐르면 명인의 전당에 오르는 분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공연장 로비에 전시를 열어 현재 열리고 있는 국악 공연의 뿌리와 흐름을 증명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명인의 전당은 무료 개방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열고, 공연이 있는 날에는 세 시간 연장 운영된다. 02-580-3130.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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