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디아스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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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북한 대표 정대세(27·보훔), 일본 대표 이충성(26·히로시마). 카타르 아시안컵을 누비는 재일동포 선수들이다.

 이스라엘을 떠나야 했던 유대인들은 이산(디아스포라)의 아픔을 이겨내고 세계 각국에서 경제공동체를 형성했다. 일제 강점의 아픈 역사를 딛고 아시아 최강이라는 한국 축구의 저력을 발산하는 동포 선수들은 한국 축구의 ‘디아스포라’라 부를 만하다.

 중국에서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차세대 대표가 무럭무럭 자란다. 조선족 축구팀 옌볜 FC의 미드필더 김경도(19)는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중국 대표팀에 발탁됐다. 소집된 26명 중 가장 어렸고, 조선족으로는 14년 만이었다. 지난해 아시아축구연맹(AFC) U-19(19세 이하) 선수권에서 중국 대표팀 주장을 맡았던 그의 잠재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김경도는 지난 4일부터 옌볜 FC가 훈련 캠프를 차린 전북 완주에서 동계훈련을 하고 있다. 11일 만난 그는 “대표로 선발됐을 때 짜릿함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조선족이란 긍지를 안고 뛴다. 조선족을 대표해 꾸준히 대표팀 선수로 뛰고 싶다”고 말했다. 가오훙보 중국 대표팀 감독은 이번 아시안컵 멤버에 김경도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김경도에게 “2014 월드컵에 대비해 너를 뽑았다. 언제든 선발될 수 있으니 꾸준히 준비하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정헌철 옌볜 FC 총경리(단장)는 “옌볜 팀은 1960년대 중국을 제패했고 90년대까지 꾸준히 중국 대표를 배출해 왔다. 하지만 동포들이 중국 각지로 떠나고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축구도 쇠퇴했다. 그래서 김경도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전했다.

 옌볜 FC는 14년 전 마지막 조선족 중국 대표였던 김광주 감독이 이끌고 있다. 그는 “오랜만에 대표팀 후배가 나와 기뻤다. (김)경도는 왜소한 체구(170㎝·64㎏)에도 장점이 많다. 축구 센스와 적극성이 대단하다”고 설명했다.

 월드컵 무대에 선 정대세는 김경도에게 큰 자극이 됐다. 그는 “남아공 월드컵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눈물을 흘린 정대세 선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국적과 상관 없이 조선 사람이란 동질감 때문인지 나도 감격했다”고 말했다. 옌볜 FC에는 중국 올림픽 대표팀에서 뛰는 박성(22)도 소속돼 있다. 그는 현재 이집트에서 훈련 중인 대표팀에 합류해 있다.

완주=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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