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트스키로 변신' 미 해병대 '트랜스포머' 상륙장갑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 해병대가 개발 중인 '트랜스포머' 상륙장갑차 EFV[중앙포토]

미 해병대의 숙원사업인 차세대 상륙용장갑차 'EFV (Expeditionary Fighting Vehicle)'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지난 6일 "백악관이 향후 5년에 걸쳐 국방부 예산을 사실상 전면 동결할 것을 지시했다" 고 밝혔다. 이에 따라 130억 달러 규모의 미 해병대 차세대 상륙용장갑차 도입 계획은 다음 행정부로 미뤄지게 됐다. 이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계속돼 오던 군비 증강 기조가 처음으로 반전되는 것이다.

미 해병대는 1980년대 '수평선 너머(Over the horizon)' 라는 신개념의 상륙작전 전략을 수립했다. 이는 해안에서 멀리 떨어져 비교적 안전한 '수평선 너머' 지역에서 기습적인 작전을 펼친다는 개념이다. 즉 항공기와 상륙장갑차 등 빠른 공격 수단을 활용해 짧은 시간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다는 것이다.

미 해병대는 이를위해 1980년대 말부터 차세대 상륙작전 무기개발에 나섰다. 이른바 '해병대 트라이어드(triod)' 로 불리는 EFV와 V-22 수직이착륙 수송기, 공기부양정(LCAC)이 그것이다. 상륙작전에 필요한 보급품을 실어 나르는 공기부양정이 가장 먼저 실전 배치됐다. 그리고 병력수송을 위한 'V-22 오스프리'는 지난 2007년 부터 배치되기 시작됐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공격수단인 EFV 개발은 난항을 겪어왔다.

공기부양정 , V-22 오스프리[중앙포토]


차기 상륙용장갑차는 1980년대에 프로토 타입이 완성됐다. 제너럴 다이내믹사가 1996년 6월 이를 인수해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다. 가장 역점을 둔것은 '속도와 작전거리'였다. 장갑차는 물론 장갑차를 수송하는 상륙함 모함의 안전과도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적 지대함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상륙함 모함이 해안에서 일정거리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 상륙장갑차 역시 빠른 시간에 해안에 도달해야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EFV는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트랜스포머' 형으로 설계됐다. 상륙함 모선에서 바다로 나오면 EFV의 무한퀘도 바퀴가 차체 안으로 들어간다.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어 차체 바닥과 앞에서 서핑 보드와 같은 철판이 나오며 장갑차는 제트스키처럼 날렵하게 변신한다.

무게가 38톤에 달하는 EFV가 파도를 헤치고 달리는 모습은 마치 모터보트가 물위를 질주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엔진 출력이 2,800마력으로 두 개의 워터제트를 가동시킨다. 수상 최고속도가 시속 46km다. 1972년 도입된 현재 미 해병대의 상륙장갑차 AAV(Amphibious Assault Vehicle ·최고속도 14.3km/h) 보다 세배가 빠르다.

지상에서의 최고속도도 시속 72.4km로 AAV보다 10km 빨라졌다. 작전반경도 넓어졌다. 해상에서 120km, 육상에서 523km를 달린다. 이 외에도 차체를 고강도 알루미늄 등 특수금속으로 제작해 무게는 줄이면서도 장갑기능은 강화됐다. 30mm 기관포도 장착해 화력도 강해졌다.

그러나 의욕이 과했다. 역대 최강의 상륙장갑차를 개발하기위해 온갖 첨단 기능을 집어넣다 보니 가격과 개발비가 눈덩이처럼 불어 났다. 또 트랜포머형 설계는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차체에 물이 새는 등 테스트를 할 때마다 오작동이 발생했다. 'EFV는 결함 투성이'라는 오명을 들어야 했고 개선 작업 역시 순탄치 않았다. 개발이 지지부진 하다 보니 국방예산 삭감론 나올 때마다 EFV는 사업중단 1순위에 올랐다.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EFV는 성능 개선을 거쳐 2010년 마지막 테스트 단계에 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게이츠 장관이 이날 '사업중단'을 발표해 미 해병대 30년 숙원사업이던 차세대 상륙장갑차는 빛도 보지 못한 채 퇴장하는 비운을 맞게 됐다.

주기중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