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의 세상읽기

친서민 해법, 사회적 기업에서 찾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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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종수
논설위원

포스코에는 포스코 작업복이 아니라 ‘포스위드’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편물 수발과 포스코 직원의 작업복 세탁, 콜센터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고임금의 포스코 정식직원에게 맡기기엔 부담스러운 허드렛일을 도맡아 한다. 포스코가 2008년 84억원을 투자해 설립한 사회적 기업 ‘포스위드’에 소속된 직원들이다. 장애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회사다. 전체 직원 303명 가운데 장애인이 165명이고 이 중 중증장애인이 78명에 이른다. 포스코는 무작정 퍼주기식 기부가 아니라 일을 맡기고 대가를 지불하기에 부담이 적고, 포스위드 직원들 또한 당당하게 자기 몫의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서울 행복한 학교’는 서울시내 각 초등학교로부터 방과후 학교를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계약강사 70명에 위촉강사 100명을 고용해 사교육을 대신할 각종 강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SK가 서울시와 공동으로 설립한 예비 사회적 기업인 ‘행복한 학교재단’이 그 주체다. SK는 재단의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한 경영지원을 맡고, 서울시는 강사 양성 및 전산시스템 구축, 행정지원을 맡았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고급 청년인력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만들어주면서 저소득층의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주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사업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친서민(親庶民)을 내세운 이후 정부나 각급 지방자치단체들은 온통 서민 관련 대책을 찾느라 부산하다. 기업들도 거의 등을 떼밀리다시피 친서민, 친중소기업 상생방안을 찾느라 분주하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대기업과 금융회사들이 제도금융권으로부터 소외된 서민들에게 금융혜택을 준다며 만든 것이 미소(美少)금융이다. 지난해 말까지 은행 휴면예금과 대기업들의 기금출연으로 약 8000억원의 재원을 만들어 모두 1159억5000만원을 지원했다고 한다. 당초 지원계획 2000억원에 비하면 실적이 저조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 주도의 대규모 서민금융지원이란 발상 자체가 금융원리에 어긋나기에 지원을 늘리기 어렵게 돼 있다. 미소금융은 신용등급이 낮아 제도권 금융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담보 없이 연 2~4%의 낮은 금리로 창업·사업 자금을 빌려준다고 한다. 신용등급이 낮다는 것은 돈을 떼먹을 확률이 높다는 것인데 담보도 없이 그것도 거의 공짜에 가까운 금리로 대출해 준다는 것은 금융의 기본 상식에 어긋난다. 출범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아 아직 표면화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시간이 지나고 대출규모가 확대되면 부실이 크게 늘어날 위험이 크다. 미소금융이 지속가능한 금융제도로 정착되기 어려운 이유다. 정부는 미소금융이 노벨상을 받은 모함마드 유누스의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 Credit: 소액신용대출) 그라민은행을 본떴다고 하지만 실은 마이크로 크레디트와는 거리가 멀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민간의 자발적인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극빈계층의 자립을 위해 최소한의 자금을 빌려주되 금리는 시장금리를 반영한다. 유누스조차 최소 20~25%는 물려야 마이크로 크레디트가 정상적으로 지속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런 식의 금융지원은 저신용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를 뿐만 아니라 열심히 신용을 지켜온 대다수 서민중산층에 대한 역차별로 자립의지를 꺾는 부작용이 크다. 도덕적 해이를 막자면 대출심사를 까다롭게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대출실적이 확 늘어나기 어렵다. 금융원리에 맞지 않는 미소금융이 직면한 딜레마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을까. 이왕 대규모 자금이 조성된 만큼 미소금융 자체를 없던 일로 돌리기는 곤란할 것이다. 방법은 미소금융의 재원을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와 연계시키는 것이다. 지원대상은 저신용자·저소득층·사회적 취약계층으로 삼되 수혜자는 개인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업계획과 지속가능한 경영능력을 갖춘 사회적 기업에 초점을 맞춰 집중적인 지원을 하자는 얘기다.

사회적 기업의 장점은 기업형 사업규모를 갖출 수 있어 개인사업자의 영세성을 벗어날 수 있는 데다, 다수의 종업원을 고용하는 형태여서 지원자금의 개인적 유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다 대기업과 정부기구, 민간단체들이 자금과 사업 아이디어, 후속지원체제 등을 제공할 수 있어 안정적으로 사업을 꾸려나갈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사회적 기업은 앞으로 새로 개척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갈수록 확대되는 사회복지서비스 분야는 물론 환경·교육·문화예술·의료 서비스 분야에서 자생력 있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널려 있다.

 미소금융은 지난해 사회적 기업에 전체 지원액의 4.3%에 불과한 49억4000만원을 지원했다. 사회적 기업을 활성화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이제라도 미소금융의 핵심 목표를 사회적 기업 지원으로 돌려야 한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