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남미에 새마을운동 전할래요”

미주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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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티노들의 대부’ 송인준씨…‘하버 오브더 월드’ 운영
주먹세계 전전하다 미국서 떡공장으로 성공

해방 정국 혼돈속에서 한때나마 세상을 풍미했던 주먹세계의 강자로 군림하다 쫓기듯 지난 1969년 건너온 미국. 굴곡진 삶의 여정이었지만 미국은 그에게 또 다른 도전의 연속이었다. 마피아 소유의 회사에서 트럭 정비공으로, 가발업으로, 해양업으로 다양한 삶의 여정을 펼쳤다. 그러나 파산이라는 고통을 겪은 뒤 뒤늦게 우연찮게 뛰어든 떡 공장은 그의 인생 2막을 새롭게 펼치는 계기가 됐다. 드라마같은 인생의 주인공은 김두한의 왼팔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일명 송하사, 송인준(80, 하버 오브더 월드, 사진) 사장. “과거는 한때의 젊은 혈기를 부렸던 나날들”이라며 말을 아낀 그는 “이제는 라티노들의 동반자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볼티모어 시에 위치한 떡공장 ‘하버 오브더 월드(홈 오브더 월드)’.

지난 87년 컬럼비아에서 파산한 이스트웨스트를 엉겹결에 인수, 떡볶기와 떡꾹 떡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다.

“이런 저런 일을 했지만 떡은 처음이었습니다. 당시 인근 식당 주인들이 이렇게 만들어라 저렇게 만들어라 하는 훈수에 온갖 시행 착오를 거치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하버 오브 더 월드가 생산하는 하루 떡 생산량은 쌀 6000파운드. 20파운드 들이 300포대 양이다. 최대 1만 파운드까지도 생산이 가능하다. 여기서 만든 떡은 미 전역으로 배달된다. 떡 생산량으로는 미국내에서도 손꼽을 정도다.

이 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라티노들. 사업 초기에는 한인들을 주로 고용했지만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아 2000년대 들어서는 모두 라티노 직원들로 바꾸었다.

“10여년을 지나면서 이곳을 거쳐간 라티노 직원들만 400~500명 가량은 될 겁니다. 한 여직원의 경우 무려 20년을 근무했지요. 일을 잘 못하면 야단을 치죠. 그러면 직장을 나가기는 하는데 다시 들어옵니다. 그러다 보면 평균 6~7년은 근무를 하는 것 같아요”

송 사장이 라티노 채용에 적극적인 것은 2000대부터 남미를 다녀오면서부터다. 가난에 찌들리고 각종 자연 재해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마음 문이 열려서다.

이 때문에 미국에 들어와서도 불체자로 전락한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떡 수요가 늘면서 반 자동 시설을 자동으로 고칠 생각도 가끔 하고 있지만 그러면 직원들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 이것마저도 선뜻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과테말라로 돌아간 한 불체자 직원의 아들이 대학을 다녀야 한다는 말에 매달 200달러를 보내기도 한다. 나눔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80을 넘어선 육체지만 마음은 아직 젊다”는 그는 이제는 아예 남미로 진출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 가능하다면 일부지역에서라도 라티노들의 삶을 바꾸고 싶다는 소망이다.

그래서 엘살바도르에 각종 곡물 씨앗을 보내 미나리 농장을 만드는 등 각종 농장도 건설하고 있다. 또 이들이 자급 자족할 수 있도록 자전거 공장을 비롯 생활 필수품을 만드는 가내 수공업 시설도 함께 세울 생각이다.

엘살바도르를 중심으로 온두라스, 과테말라, 니카라과 등지에 한국식 새마을 운동을 접목시키겠다는 것이 그의 꿈이기도 하다.

“남미를 다녀오기 전에는 마지막 여생을 한국에서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라티노들을 비롯 남미가 내가 마지막 불꽃을 태울 곳이라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이에 따라 그의 공장 한켠에는 이같은 계획을 이루기 위한 각종 물품이 가득하다. 두부 만드는 기계를 비롯 아이스크림 기계 등 가내 수공업에 필요한 장비들이 수북히 쌓여 남미에 보내질 날만 기다리고 있다.

라티노들의 대부로 자리 잡은 그는 라티노 선교에 앞장서고 있는 굿스푼으로 부터 2010 굿스푼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남들 앞에 좀처럼 나타나기를 꺼리는 그. 하지만 20-30대 청춘의 열정 만큼 아직도 마음속에 열정이 가득하다는 송 사장은 “예전에는 말이 곧 신용이고 행동이었다”면서 말보다 행동으로 몸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워싱턴중앙일보= 허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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