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지도자의 입과 관료의 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김현기
도쿄 특파원

2009년 9월 일본에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 직업적으로 느끼는 변화 한 가지. 총리의 기자회견장에 외신기자들이 들어갈 수 있게 됐다. 150여 명의 일본 국내 기자에 비해 외신 몫은 불과 15명. 신청자가 넘치면 사전에 추첨으로 뽑는다.

 4개월 전 간 나오토 총리가 취임한 이후 다섯 차례 기자회견이 열렸다. 추첨 운이 있는지 운 좋게도 대부분의 기자회견에 참석할 수 있었다. 15분가량의 총리 연설이 끝나면 그때부터는 일문일답이다. 처음에는 질문하기 위해 난 열심히 손을 들었다. 그러나 요즘은 손을 들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 질문자가 정해지는지 감 잡았기 때문이다. 일본 기자들의 질문은 약 10~15건. 이에 비해 외신기자의 질문 몫은 늘 한 명이다. 질문자와 질문 내용은 사전에 조율된다. 그러니 기자회견장에서 한국 기자가 아무리 열심히 손들고 “저요, 저요”를 외쳐봐야 소용없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한국 언론들이 시도하는 게 인터뷰다. 간 총리와 지난 연말 인터뷰를 했다. 그는 끝까지 ‘서면 인터뷰’를 고집했다. “너무 바빠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관료들이 만든 모범답안을 직접 감수하는 데 30분 가까이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 시간에 ‘대면 인터뷰’를 했으면 되는 일이다. 서면으로 돌아온 답변은 “계속 노력하겠다” 등의 의례적 내용뿐이었다. 정작 알고 싶은 민감한 질문에는 아예 답조차 않았다.

 이뿐 아니다. 지난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직전 한국 언론과 한 인터뷰도 서면이었다. 또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었던 지난해 오카다 당시 외상의 인터뷰, 이달 초의 마에하라 외상과의 인터뷰 또한 모두 서면이었다. 기억하는 한 최근 2~3년 사이 모두 그랬다.

 원래 이랬던 건 아니다. 과거 일본의 총리·외상과의 인터뷰는 기본적으로 모두 대면 인터뷰였다. 그게 서면 인터뷰가 되니 답변에 대해 추가적 질문을 할 수 없게 됐다. 그저 입에 발린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전하고는 끝이다. 세계를 향해 일본의 정책·소신을 자신 있게 말할 배짱 있는 ‘지도자의 입’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모두가 ‘관료의 글’에 의존하며 면피만 하려 한다. 자신감 없는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주장에는 힘이 실리지 않는 법이다. 기자회견이나 인터뷰를 아무리 해도 외신에 비중 있게 소개되지 않는다. 일본에 몰렸던 전 세계 특파원들이 하나 둘 짐을 싸 일본을 떠나고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남의 나라 흉만 볼 게재는 아닌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4년 차에 들어서도록 각종 정상회담 관련을 제외하면 딱 네 번만 기자회견을 했다. 그나마 두 번은 G20 관련이고, 나머지는 미국·일본 순방 관련(2008년 4월)과 미국산 쇠고기 사태 관련(2008년 6월)이다. 올 신년사도 기자회견이 아닌 ‘연설’이었다. 일방소통이란 소리를 들어도 별 수 없게 됐다. 외신은커녕 국내에서의 쌍방소통마저 꽉 막혀 있으니 “간 총리에 비해 나은 게 뭐가 있나”라고 일본 기자가 핀잔해도 달리 대꾸할 말이 없을 것 같다.

김현기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