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뜯고 싸우고 … 양반 동네 안동이 갈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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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43개 시·군·구를 휩쓸고 있다. 권영세(가운데) 안동시장이 최근 시내 한 음식점을 찾아 민심을 듣고 있다. [안동=연합뉴스]


안동이 울고 있다. 죄책감에 눈물 흘리고, 날선 갈등이 안타까워 눈물을 쏟는다.

 안동 사람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고택, 서원 같은 전통 자산이 잘 보존돼 있고 선비문화의 정신이 풍성하기 때문이다. 안동시는 이런 정서를 반영해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를 상표등록할 정도다. 남이 곤경에 처하면 위로하고 격려하는 게 안동의 정서였다.

 지금은 다르다. 구제역이 시민들의 가슴에 마음을 팍팍하게 만들었다. 날선 갈등과 반목이 도시를 집어삼키고 있다.

 

지난해 11월 29일 경북 안동에서 첫 발생한 구제역이 한 달이 지나고 해가 바뀌었다. 하지만 사태는 진정될 기미가 안 보인다. 오히려 피해는 눈덩이처럼 더 불어나고 있다. 구제역은 6개 시·도 43개 시·군·구로 확산됐다. 살처분해 매몰한 가축만 70만 마리를 넘어섰다. 안동은 지금 첫 발생지란 이유로 죄책감에 빠져 있다. 발생 원인을 놓고 소문에 소문을 더해지면서 민심은 흉흉하기까지 하다.

 3일 남안동IC에서 차량이 소독약을 덮어쓴 채 안동으로 들어섰다. 도로변에는 ‘구제역 퇴치하여 청정안동 명성을 회복하자’는 등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안동시 관계자는 “발생 원인을 놓고 축산인들의 반목과 갈등이 좀체 가라앉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구제역은 당초 와룡면 서현단지의 권모(53)씨 등 양돈 농가 두 곳에서 발생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베트남 여행을 다녀온 권씨가 구제역 바이러스 유입 경로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그때부터 권씨는 구제역을 들여온 장본인으로 낙인이 찍혔다. 권씨는 다른 사람과 접촉을 피할 정도로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베트남 여행에는 권씨 말고도 축산인 두 사람이 더 있었다. 공교롭게도 세 사람은 모두 권씨였다. 이들은 모두 입국 때 검역을 거치지 않았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러자 안동에선 ‘때려죽일 3권’이란 말까지 나왔다. 한 사람은 현직 축협조합장 권모(55)씨였다.

 비난의 화살은 조합장에게로 급격히 옮겨갔다. 누구보다 방역에 앞장서야 할 사람이 도리어 구제역을 들여왔다는 원망이었다. 성난 농민은 “당장 사퇴하라”며 칼을 들고 조합 사무실을 쳐들어갔다. 그러다 지난달 중순 돌출 변수가 생겼다. 구제역이 첫 발생한 서현단지의 또 다른 양돈 농가 양모(46)씨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11월 23일 첫 의심 신고를 하고 간이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농장이다. 문제는 양씨가 10월부터 돼지가 죽자 신고도 하지 않고 농장 인근에 매몰했다는 것이다. 직접 땅을 판 굴착기 기사의 증언까지 나오면서 발생 혐의는 갑자기 양씨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때부터 발생 원인을 둘러싼 논란은 권씨 대 양씨로 편가르기로 번져갔다.

 이렇게 소문이 흉흉해지자 경찰이 나섰다. 의혹을 규명하겠다며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6일 양씨 농장에서 구덩이 세 곳에 묻힌 죽은 돼지를 꺼내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조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권혁우 안동경찰서장은 “돼지가 죽은 원인을 밝혀 주민 간 오해와 불신을 해소하면 좋겠지만 확인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취재진은 오후 1시반 안동역 앞 갈비골목을 찾았다. 한우 갈비 음식점 15곳이 밀집한 명물거리로 평소에는 손님으로 북적거렸지만 지금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S갈비집 주인은 “두 번째 손님이 오셨다”며 “오늘은 운이 좋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음식점은 고기를 군위에서 들여온다. 매출은 10분의 1로 뚝 떨어졌다. 그는 “하루아침에 무너져내린 안동 한우의 자존심도 문제지만 주민끼리 패가 갈려 비난하는 건 더 가슴 아프다”라고 말했다.

 안동시는 아직도 초비상이다. 소·돼지 등 가축 17만 마리 중 15만 마리는 매몰하고 나머지 가축은 예방접종까지 마쳐 일단 고비는 넘겼다. 문제는 가슴 속에 큰 상처가 난 주민들이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5일 특별담화를 통해 다난흥방(多難興邦·어려움을 극복하고 나서야 지역을 일으킨다)이라는 말을 제시하며 화합과 단결을 강조했다. 임진왜란을 수습한 재상 유성룡은 두 번 다시 치욕을 당하지 않도록 전란의 교훈을 『징비록』으로 남겼다. 이 책을 쓴 곳이 안동이다.

안동대 이희재 총장은 “지금 안동에는 남을 탓하고 욕하기보다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반성하고 다시는 이런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서로 격려하는 징비록의 정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안동=송의호·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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