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용 동물의 삶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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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호 31면

대니얼 안드레스 샌 디에고는 ‘테러리스트’란 딱지를 단 채 미국 FBI의 1급 지명수배자로 등록돼 있다. 적어도 FBI로부터는 역시 1급 지명수배자인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과 알자와히리와 ‘동급 대우’를 받는 셈이다. 하지만 샌 디에고가 알카에다처럼 불특정 다수의 미국인을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는 아니다. 그는 큰 제약회사의 하청을 받아 동물실험을 하는 회사인 ‘헌팅던 생명과학’에 폭탄을 터뜨린 사건에 연루돼 쫓기고 있다.

지난해까지 미국에서만 동물보호 운동가들이 일으킨 범죄는 건수로 1800여 건, 재산피해로 1300억원을 넘는다. 동물실험을 하는 과학자들에 대한 위협도 중단되지 않고 있다. 이런 피해를 막고 동물실험 과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미 의회는 2008년 ‘동물실험에 관한 테러 방지법(AETA)’을 제정했다. 지난해 UC 버클리의 연구원 집을 무단 침입한 네 명의 동물 운동가가 이 법에 따라 법정에 섰다. 그러나 연방법원은 지난해 7월 12일 ‘기소 내용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기소 중지를 선고함으로써 이 사건은 일단락됐다. 동물실험에 관한 테러 방지법이 제정된 뒤 첫 번째 법정 시험대에서 동물 애호 운동가들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이 사건을 계속 조사해 다시 기소할 예정이라 당분간 이 법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 같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동물을 무척 좋아했다. 지금도 집에서 개를 가족처럼 키우고 있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수천, 수만 마리의 동물이 어두운 실험실에서 고통당하며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에는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다. 인간이 동물을 학대하고 괴롭히는 일은 없어져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요하지 않은 일인데도 동물들을 괴롭히고 죽인다면 이는 생명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누구보다도 동물실험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많은 연구를 통해 각종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고, 불치병의 예방법과 치료약을 개발하려면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시험관 안에서 아무리 완벽한 치료제를 개발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사람에게 효과가 있을 가능성은 0.01%도 안 된다. 그렇다고 나치나 일제처럼 곧바로 인체실험이란 미친 짓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동물실험을 못할 경우 질병 연구는 물론 더 이상 신약 개발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실제로 우리 삶과 생활에 필수품이 되다시피 한 아스피린이나 타이레놀 같은 상비약들도 동물실험을 통해 그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된 다음에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필자도 지난달에 간단한 동물실험을 위해 계획안을 제출하고 허가를 받았다. 아주 간단한 실험이지만 보충자료를 제외하고도 28쪽에 이르는 세부 계획을 작성해야 했다. 그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은 동물이 겪을 수 있는 고통을 어떻게 최소화하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작은 생쥐 한 마리에게까지도 고통을 줄이기 위해 마취제를 주사하고 그 효과가 없을 경우에까지 대비해야 한다. 또한 간단한 처치 하나라도 허가를 받지 않으면 시행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할 시에는 실험실 문을 닫을 각오까지 해야 한다. 비록 보잘것없는 작은 동물이지만, 생명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라는 것이다.

이렇게 동물실험을 통해 개발된 약들이 사람 목숨을 구하고 병마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을 보면 실험용 동물들은 의미 있는 삶을 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들의 삶을 판단하는 기준은 제각각 다를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면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편도훈 경북대 미생물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바이러스학과 종양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지냈다. 미국암연구 학회와 바이러스학회 등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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