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C 개입하자 중국이 화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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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현(사진)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이 “천안함 사건도 전쟁범죄에 포함되므로 ICC의 조사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송 소장은 29일 서울 논현동 임페리얼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한걸음포럼 창립 행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최근 ICC 검찰국이 예비조사를 실시키로 한 천안함·연평도 사건의 전쟁범죄 구성요건에 대한 견해를 나타냈다.

 ICC의 모레노 오캄포 수석검사는 이달 초 한국 시민단체의 고발에 따라 연평도·천안함 사건에 대한 예비조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연평도 피격은 군사력으로 회원국 영토의 민간인을 살상해 전쟁범죄가 성립되지만 천안함은 전투원이 사망한 것이어서 범죄요건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본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송 소장은 이에 대해 “정확한 분석이 아니다”며 “ICC 규정 제8조에 따르면 휴전 등 전투 의사가 없는 상황에선 전투원 살상도 전쟁범죄 요건이 된다”고 반박했다.

 ICC 검찰이 기소한 사건에 대해선 송 소장이 최종심 재판관을 맡는다. 이 때문에 검찰 조사에 관한 송 소장의 의견 피력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송 소장은 예비조사 실시를 발표하자 중국 측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는 뒷얘기도 전했다. 그는 “유엔과 (ICC 본부가 있는) 네덜란드 주재 중국대사 등이 ‘ICC가 법률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다’며 ‘그런 식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가 ICC에 가입하지 않는 것’이라고 화를 내더라”고 말했다. 송 소장은 또 만약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기소된다면 “ICC 회원국인 한국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송 소장과의 일문일답.

 -중국이 화를 낸 배경이 무엇일까.

 “중국은 남북관계의 가장 강력한 조정자다. 한반도 문제를 6자회담 등 자신들의 계획대로 끌고 가려 했는데 갑자기 ICC가 개입해 생채기를 낸 것에 불만을 품은 것 같았다. 이번에 돌아가면 중국 대사가 밥 먹자고 하던데 체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북한이 ICC 비회원국인데 어떻게 기소할 수 있나.

 “비회원국 국민을 조사·기소하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의결을 통해 요청하는 경우, 비회원국 국민이 스스로 자국 인사를 기소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 검사 스스로 판단해 직권으로 조사하는 경우다. 연평도·천안함의 경우는 검사의 직권으로 조사가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진행될 절차는.

 “예비조사에선 사실 확인과 법률 검토가 이뤄진다. 그 결과 전쟁범죄로 판단되면 검찰이 재판부에 수사 개시 허가를 받아 본격 수사에 착수한다. 연평도·천안함에 관해선 직접 작전을 명령한 이가 누구냐가 밝혀져야 한다. 이후 구속영장 발부, 기소, 재판 등이 이어진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고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시효가 없다. 끝까지 추적한다.”

-현실적으로 김 위원장을 재판에 회부할 수 있겠나.

 “찰스 테일러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을 기소했을 때 아무도 그를 재판정에 세울 수 있다고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우리 감옥에서 음식 투정을 하고 있다. 기소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부통령은 ICC 회원국인 벨기에에 잠시 들렀다가 체포됐다. 그만큼 독재자들에겐 ICC 기소가 큰 압박이다. 만약 김 위원장이 기소된다면 회원국인 한국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하기 힘들 것이다. 원칙적으로 남한 당국은 그가 방문하는 즉시 체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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