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치기간 단축…주택시장 흔드나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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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서울 양천구의 중형아파트를 매입한 김모(43)씨는 최근 신문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김씨가 본 신문기사는 금융감독원이 내년 1분기부터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거치기간을 단축하도록 하고 거치기간 자동연장 관행도 행정지도 형식으로 막기로 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3년 거치 15년 원리금분할상환조건으로 2억원을 대출받아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매입했다. 이자는 연 6%선(변동이자율). 지금은 원금 상환없이 이자만 내는 거치기간이라 매월 100만원 가량을 이자로 내고 있다.

김씨는 내년 3월 거치기간 연장을 통해 이자만 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금감원 방침에 따라 거치기간 연장이 불가능해지면 거치기간이 끝나는 내년 3월부터는 원금과 이자를 합해 매월 168만원 정도를 내야 한다.

김씨는“월급은 뻔한데 애들 교육비는 계속 늘어나 한 달 100만원 이자부담도 벅찬 상황”이라며 “도저히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나갈 능력이 안 되기 때문에 집을 팔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24일 주택담보대출 거치기간 연장을 자제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주택시장에 비상이 걸렸다. 대출금 상환 부담을 견디지 못한 집주인들의 매물이 늘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월 금융비용 부담 크게 늘어

현재 주택담보대출 273조원 가운데 거치기간 연장 또는 만기 일시상환 등 원금상환이 유예된 채 이자만 부담하는 대출이 229조4800억원으로 주택담보대출의 84%나 된다.

우리은행은 내년에 거치기간이 끝나 원금 상환이 시작되는 주택담보대출 금액이 2조8000억원으로 추산한다. 기업은행은 전체 대출 가운데 14%가 1년 내 거치기간이 끝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대출자는 만기가 도래하거나 거치기간이 끝나도 이를 연장했다. 금융위원회 발표 자료에 따르면 만기 일시상환 대출의 만기연장률은 95%에 이른다.

이런 대출 관행은 선진국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다.

선진국 대부분의 주택담보대출은 거치기간 없이 원리금 분할상환에 들어간다. 미국의 경우 서브프라임 모기지(저소득층 대상 대출)만 3~5년의 거치기간이 있다. 나머지는 원리금 분활상환이다. 대출을 통해 집을 구입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달 나가는 원리금을 감안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대출자들이 원리금이 아닌 이자만 고려하고 대출을 받는다. 원리금 균등 상환을 금감원이 유도하게 될 경우의 매물이 증가하는 등 충격파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자만 내다가 이자와 원리금을 함께 내면 당연히 가계의 부담이 늘어난다. 특히 대출을 받고 전세를 낀 상태에서 집을 여러채 구입한 다주택자들의 대출금 상환 부담은 더 커지게 됐다.

일부 부유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봉급생활자들은 매달 빠듯하게 수입ㆍ지출을 맞춘다. 원리금 부담에 집을 처분하는 경우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2000년대 중반과 달리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도 크게 줄어든 상태다. 이미 집값이 소득대비 너무 많이 올라 있기 때문에 물가상승률 이상 집값이 오르기는 힘들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집을 팔고 전세로 돌아서는 경우도 늘 전망이다. 갑자기 늘어나게 되는 금융비용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불안한 전세시장이 더 불안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신한은행 김상훈 부동산전략팀장은 “회복세를 보이던 주택시장에 거치기간 단축 유도라는 돌발 악재가 나타난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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