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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발전 위해 양보했던 대처처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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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황기식
동아대 동북아국제대학원 교수

4대 강 사업권을 놓고 국토해양부와 경상남도가 벌인 갈등을 보면 유럽연합(EU)의 사례가 떠오른다. EU는 예산분배권과 사업승인권을 쥐고 있는 집행위원회를 중앙정부로 하고, 그 산하에 각 회원국이 지방정부 격으로 포진해 있다. EU집행위는 회원국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도 개별 지역에 대한 지역발전 예산을 할당하고 사후평가까지 한다.

 이 과정에서 지방정부 격인 회원국은 주권의 일정 부분을 양보해야 하는 것인 만큼 중앙정부와의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주권침해 논란도 있었고, 회원국 내 지역의 분리독립 움직임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이에 EU 역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역할 분담과 이견 조율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브뤼셀에 위치한 중앙정부에 대한 신뢰와 양보가 실질적인 지역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데 이해를 같이하게 됐다.

  영국의 대처 총리는 주권침해를 우려하며 유럽통합에 부정적이었다. 영국이 아직 유로존 가입에 부정적인 이유도 그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EU에 의한 주권침해를 우려하던 대처도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선 EU에 양보 했다. 탄광사업 퇴조와 제조업 몰락으로 어려움에 처한 산업도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였다. EU집행위가 직접 그 도시들에 대한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데 대해 간섭하지 않고, 영국 정부의 목소리를 줄임으로써 보다 많은 지역발전 보조금이 지원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영국 내 많은 지역이 발전할 수 있었다. 현재는 EU 중앙정부가 있는 브뤼셀에 영국의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대표단을 파견해 더 많은 지역보조금을 지원받고자 노력하고 있고, ‘지방외교관’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지방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방정부가 관할하는 지역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큰 역량을 갖고, 더 많은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중앙정부를 활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발전을 위해서는 일정 부분의 주권까지 양보할 수 있는 EU의 사례는 시사점이 크다. 정부도 밀어붙이기보다는 지방정부를 설득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지역발전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한 걸음 물러났던 대처 총리와 같은 모습을 한국에서도 기대해 본다.

황기식 동아대 동북아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