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춘전철, 실버문화 새 세계를 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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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 복합전철이 수도권 중년 이상 주민들에게 젊음을 선사하고 있다. 경춘선에 몸을 싣고 추억과 낭만을 되살리는 것이다. 춘천 유람도 하고 맛집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진은 경춘선을 타고 춘천 대표 음식 중 하나인 닭갈비집을 찾은 수도권 주민들. [춘천=최승식 기자]

“명동 가야지.” 김희동(69·서울 사당동·사진)씨. 요 며칠 세상이 장밋빛인 이유다. 그가 말한 명동은 서울 명동이 아니다. 춘천에 있다. 닭갈비로 유명하다.

 친구들과 같이 말로만 듣던 닭갈비 맛을 온몸으로 즐길 수 있다는 거다. 젊음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다.

 24일 오전 9시쯤 서울 지하철 7호선 상봉역. 경춘선 복선전철이 출발하는 곳이다. 기온은 30년 만에 가장 낮은 영하 15도. 그래도 김씨는 설렘이 가득했다. 산악회 친구 3명과 함께 명동 가는 설렘이다. 40년 전 소풍 갈 때도 그랬다. 21일 개통한 경춘선 복선전철은 4일 동안 18만8000여 명이 이용했다. 이 중 절반 정도가 65세 이상 승객이다. 하루 평균 4만7000여 명이 이용할 정도로 인기다. 하루 운행 열차는 모두 137편.

 김씨는 친구들과 함께 오전 10시20분발 전철에 몸을 실었다. 전철에 빈자리는 없었다. 젊은 연인들이 간혹 눈에 띌 뿐 친구들과 함께 온 나이 지긋한 승객들이 대부분이었다. 만 65세 이상 국민에게는 전철 요금이 무료다. 대부분 점심을 먹고 바람을 쐰 후 오후에 돌아올 예정이라 짐도 없었다.

 “(춘천이) 참 아름다운데 나이 먹은 이후로는 도통 못 갔어요. 그런데 이제는 마음 내킬 때 무료로 바로 떠날 수 있으니 최고지.”

 나이를 먹을수록 더 많이 움직이고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게 김씨의 지론이다. 당뇨를 앓은 지 30년이 넘었지만 건강한 이유다. 매일 점심을 먹고 나면 관악산을 오르거나 복지회관에 가서 서예를 한다. 산악회 사람들과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만나 서울시내 곳곳의 산을 오른다.

 하지만 이렇게 활동적인 김씨에게도 여행은 쉽지 않았다. 교통이 불편하면 번거로울 뿐 아니라 비용도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무척 열심히 살고 있지만 나이 들면 어쩔 수 없이 우울할 때도 있거든요. 그럴 때 기분 전환에는 여행이 제일 좋은데 떠나기가 쉽지 않았지. 그런데 경춘선 덕에 발 하나가 생긴 거야.” 삶의 활력소가 생겼다는 의미다.

 마침 창밖으로 높은 산이 보였다. 그는 “저 산이나 강은 서울에서 볼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시내에서 모임을 갖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웃었다.

 출발한 지 한 시간여가 지나고 남춘천역에 도착했다. 승객의 절반 정도가 내렸다. 김씨는 빨간 모자를 눌러쓰고 흰색 운동화의 끈을 단단히 조였다. 큰딸이 빌려준 스키 장갑도 꼈다.

 낮 12시쯤 명동 닭갈비 골목은 서울 손님들로 북적였다. 닭갈비 1인분에 1만원. 이곳에 모인 이들은 “바람 쐬고 번거롭지도 않은데 한 번쯤 못 먹겠느냐”는 분위기다. 닭갈비집을 운영하는 최모씨(47·여)는 “손님이 30% 정도 늘어 요새는 하루 400~500명이 찾는다”며 “특히 점심 손님 대부분은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라 닭갈비뿐 아니라 막걸리·소주 소비량도 많다”고 설명했다.

 김씨 일행도 닭갈비를 먹은 뒤 30분 거리의 소양강 댐으로 출발해 구경한 후 근처에서 빙어회를 먹었다. 다시 서울로 출발한 시각은 오후 5시. 그는 “날이 풀리면 경춘선 전철을 타고 갈 수 있는 김유정역·가평 등도 차근차근 구경할 계획”이라며 웃었다.

춘천=임주리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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