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엽 같은 비리 없게 … 구로구, 주민이 구청장 감사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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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주민들이 구청장의 모든 행정행위를 감사할 수 있게 하겠다.” 서울 구로구청의 선언이다. 공직자의 비리를 뿌리째 뽑아내겠다는 결의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이다. 신선하고 유쾌한 실험이라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구로구가 이처럼 극단에 가까운 처방을 한 건 이대엽 전 경기도 성남시장 때문이다. 뇌물수수와 명품탐욕 등으로 ‘비리 백화점’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장본인이다(본지 12월 22일자 22면). 제2의 이대엽이 나오지 않도록 전국 공직자들에게 경종을 울려보자는 것이다.

구로구는 22일 구청장의 활동까지 감사 대상에 포함시키는 ‘구민감사 옴부즈맨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김재순 구로구 감사담당관은 “주민들이 요청하면 공무원은 물론 구청장의 활동까지 감사할 수 있는 구민감사 옴부즈맨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이달 중 공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 초 옴부즈맨을 공개 모집하고 2월께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간다.

 이 제도의 특징은 주민 누구나 감사를 청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19세 이상 주민 100명 이상의 연서를 받으면 된다. 감사 대상은 한계가 없다. 구청장의 판공비 집행 내역은 물론 하루 일정까지도 감사할 수 있다.

 현재 주민감사 청구제는 전국 지자체 중 서울시와 대구시 등 두 곳에서만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두 곳에서도 공무원만 감사 대상일 뿐 시장의 활동은 감사 대상이 아니다. 김 감사담당관은 “감사의 대상에 예외를 두지 않기 위해 단체장까지 포함시켰다”며 “옴부즈맨 조직도 구청 눈치를 보지 않게 구청 직제와 별도로 구성한다”고 말했다.

 옴부즈맨들은 주민의 감사가 청구되면 4인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를 열어 60일 이내에 감사 여부를 결정한다. 옴부즈맨 운영위는 공모를 통해 선발한 민간인 3명과 구로구 감사담당관 1명 등 4명으로 구성된다. 옴부즈맨은 구의회의 동의를 받아 구청장이 최종 임명한다. 옴부즈맨은 변호사나 회계사 자격을 소지하고 해당 분야에서 5년 이상 경력이 있거나, 토목공학이나 행정학 등 관련 분야에서 부교수 이상 재직 경력이 있어야 한다. 또 시민단체의 추천을 받은 사회적 신망이 높고 행정에 관한 식견과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제한했다.

 이 제도가 성공하려면 옴부즈맨 위원회의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민이 참여하는 감사관제는 이미 120여 개 지자체에서도 시행 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군·구가 주민들이 임명되는 명예감사관에게 감사청구권이나 고충 민원에 대한 조사권 등을 주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명예감사관들이 감사에 참여하기보다는 민원 해결의 통로로 이용되는 실정이다. 또 명예감사관에 단체장의 최측근이나 통·반장이 위촉되는 경우도 흔하다. 최봉기 계명대 정책대학원장은 “구청장 활동까지 주민들의 감사 청구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신선한 발상”이라며 “옴부즈맨들이 구청장의 입김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구의회 등의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정훈·유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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