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법원 명령 내리면 대출계약서 제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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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현대그룹은 법원이 명령을 내리면 프랑스 나티시스은행 대출계약서를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22일 밝혔다. 현대건설 매각과 관련해 주주협의회·현대그룹·현대자동차그룹이 이날 처음으로 법정 공방을 벌였다. 현대그룹이 나티시스은행에서 대출받은 1조2000억원은 단기 대출인 브리지론 형식인 것으로 이날 확인됐다.

 ◆법원 명령 있으면 대출계약서 제출=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부장 최성준)는 이날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주주협의회를 상대로 제기한 가처분신청 사건의 심문을 시작했다. 주주협의회 측은 “현대그룹이 MOU상 정해진 자료제출 요구에 성실히 응하지 않아 MOU를 해지한 것”이라며 “현대그룹에 주식을 매각하기로 한 SPA가 부결돼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목적으로 한 가처분신청은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측 대리인은 “SPA가 작성되지 않았는데 이를 안건에 올려 부결시킨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며 “정밀 실사도 하지 못하고 최종 인수 대금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SPA 부결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대그룹은 법원이 명령을 내리면 나티시스은행과의 대출계약서를 제출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대그룹 측은 “대출계약서 제출과 관련해 나티시스은행의 동의를 받으려고 협의 중”이라며 “가처분 신청 사건에서는 시간이 촉박해 어렵지만 본안 소송에서 재판부에 한정해 제출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티시스은행 대출은 브리지론=하종선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은 이날 심문이 끝난 뒤 “나티시스은행 대출금 1조2000억원은 브리지론과 유사한 방식으로 빌린 것”이라며 “기업 인수합병(M&A)에서 브리지론을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이라고 밝혔다. 브리지론은 단기 금융상품으로 주로 본 대출에 앞서 단기로 사업 자금을 빌리는 데 활용된다. 하 사장은 “대출을 위해 자산을 담보로 하거나 자산을 활용한 파생상품을 만들거나 한 적은 없다”며 “일단 브리지론을 얻은 뒤 재무적 투자자(FI)나 전략적 투자자(SI)와 협의가 완결되면 대출 대신 투자의 형태로 대체하는 것이 널리 행해지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승자의 저주는 누구보다도 우리가 제일 우려해 추가로 투자자를 접촉하고 있다”며 “현대상선 프랑스법인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주주협의회가 내놓은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처리 중재안에 대해 “법 위에 있는 것과 같은 제안”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주주협의회 일정 미뤄질 듯=이날 법원 재판부는 “주주협의회가 현대차와 다음 주 안에 협상을 진행할 것이란 전망이 나와 신속한 결정이 필요하다”며 24일 2차 심문을 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주주협의회도 가처분 심리 일정을 고려해 향후 일정을 논의키로 했다. 주주협의회 관계자는 “실무자회의에서 법원의 심리 일정을 고려해 주주협의회 일정을 잡자는 의견이 많았다”며 “합리적인 수준까지 심리 과정을 지켜본 뒤 일정을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여부는 법원 판결이 나온 뒤에야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당초 채권단은 다음 주께 주주협의회를 열고 현대차그룹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주는 안건을 상정할 것으로 관측됐다.

강병철·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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