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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뷰] 은행, 주식폭락 충격 버팀목 돼야

중앙일보

입력

-월스트리트저널 10월 19일자 칼럼

지난 14일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이 은행가들에게 주가폭락을 경고하자마자 세계 주식시장이 출렁거렸다.

이번 사태는 주식 값이 오를 때 못지 않게 내릴 때도 대단히 비이성적으로 작동하며 주식중개인들이 은행업과 주식거래를 혼동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지난해 FRB는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가 도산위기에 처하자 파급효과가 엄청날 것이라며 구제금융을 실시했다. 구제금융의 타당성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그 결론이 어떻게 나더라도 FRB가 주식시장이 주저앉을 때 은행들이 갖게 되는 취약성을 걱정할만한 근거는 분명하다.

1920년대 주식시장의 붐은 은행들이 빌려준 돈으로 가능했다. 따라서 1929년 주가가 폭락했을 때 은행은 큰 타격을 입었다.

30년대의 공황은 바로 주식시장의 붕괴로 타격을 입은 은행과 정부의 정책실패가 복합적으로 가져다준 것이다.

일본도 지난 80년대말 주식.부동산시장 호황을 맞았지만 지난 90년 시장붕괴로 수조엔의 자산가치를 잃었다. 당시 일본 은행은 미국의 은행과 달리 주식형태로 자산을 보유할 수 있었다. 따라서 90년대 자산가치가 폭락했을 때 은행들은 아무런 버팀목도 돼주지 못했다.

은행들은 금융분야의 어려움을 실물경제로 전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실물분야에 끼치는 위험의 정도는 은행들이 대출해준 돈 가운데 얼마나 주식으로 전환돼 있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현재 주식시장의 요동에 따른 은행의 위기는 지난 30년대 대공황이나 90년대초 일본에 비견될 만한 정도는 아니다.

지난 20년대 미 월가는 지나치게 경박했으며, 일본도 주식.부동산 거품이 빠지는 것을 대처할 만한 탄력적인 정부.금융.산업구조를 갖추지 못했다.

FRB는 12년 전 주식시장이 폭락하자 유동성을 풍부하게 제공해 자산가치의 급격한 몰락을 막았고 위기가 지나가자 인플레이션의 방지를 위해 이자율을 올리는 등 효과적으로 대처해 왔다. 하지만 그린스펀의 이번 발언은 그동안 상황이 많이 변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첫째, 미 주식시장과 기업들이 과거와 달리 국제금융시장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계속되는 달러 약세는 급격한 자본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주가가 점점 더 실물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최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자산 가운데 3분의1을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3년 전엔 4분의1이었다. 따라서 주식시장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 미국인들은 좌절감을 느낄 것이다.

소비지출도 위축될 것이고 결과적으론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도에도 상처를 줄 것이다. 물론 최근 몇년간 미국인들은 가계를 잘 꾸려 왔다.

그러나 주식형태로 자산비율이 늘어나면서 주식시장의 붕괴가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는 미지수다.

그린스펀이 지난주 은행가들에게 경고한 내용은 한마디로 은행의 대출금이 주식시장의 변화에 얼마나 영향을 받을 것인가에 대해 보다 신중해지라는 것이다.

역사는 시장에 대한 신뢰가 아무런 경고 없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 때를 대비해 은행들은 보다 많은 대손충당금을 쌓아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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