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돌아온 노병 둘 ‘아직 갈 때 아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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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LIG손해보험과 KEPCO45의 경기가 열린 지난 19일 수원체육관. 1세트 20-15로 앞서던 LIG가 21-21로 동점을 허용하자 김상우 감독은 4년 만에 복귀한 방지섭(36·사진 왼쪽)을 세터 황동일의 자리에 투입했다. 꽉 막혔던 공격이 다시 풀렸다. 방지섭의 3연속 세트(공격 성공으로 이어진 토스)에 힘입어 25-23으로 1세트를 따낸 LIG는 2~3세트를 내리 이겨 기분 좋은 3연승을 달렸다.

 18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열린 대한항공과 삼성화재의 경기에서는 얼마 전까지 대한항공 전력분석원으로 일했던 이영택(33·사진 오른쪽)이 블로킹을 6개나 잡아내며 3-1 승리에 기여했다. 대한항공은 개막 후 5연승으로 날아올랐다.

 배구코트에 ‘돌노(돌아온 노병)’ 바람이 거세다. 현역에서 은퇴해 제2의 인생을 살던 이영택과 방지섭이 선수로 돌아와 각각 소속팀 대한항공·LIG를 1위와 2위로 이끌고 있다. 방지섭은 팬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지 오래다. 장신 세터(1m92㎝)로 기대를 모으며 1996년 삼성화재에 입단했지만 최태웅의 그늘에 가려 지내다 2006~2007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배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실업팀 LG전자와 용인시청에서 뛰다가 성균관대 1년 선배인 김상우 LIG 감독의 눈에 들었다. 젊은 세터 황동일이 아직 경험이 부족해 방지섭의 노련미가 도움이 될 거라는 김 감독의 판단은 정확했다. 방지섭은 20일까지 황동일과 절반 가까이 임무를 분담하며 52.8%의 높은 세트 성공률을 기록했다.

 이영택은 방지섭보다 은퇴는 늦게 했지만 선수로서 공백은 더 길었다. 대한항공에서 2008~2009시즌 후 유니폼을 벗고 전력분석원으로 변신했다. 1년간 의자에만 앉아 있다 보니 92㎏이던 체중이 106㎏까지 불었다. 올해 초 주축 센터 김형우·진상헌이 줄부상을 당하자 신영철 감독이 복귀를 권유했고, 이영택은 3개월 만에 13㎏을 빼며 준비를 마쳤다. 개막 후 다섯 경기를 모두 뛰면서 13개의 블로킹을 잡아 전체 2위에 올랐다.

 이들의 회춘 비결은 ‘가족애’였다. 방지섭은 “아내에게 다시 당당한 남편이 되기 위해 죽어라 뛴다”고 했다. “2008년 한 프로팀과 계약까지 했다가 입단이 무산됐을 때 절망감에 무척 힘들었다. 아내의 도움 덕에 위기를 넘겼고 지금 내가 있다”고 말했다. 이영택은 “복귀하기로 결정한 뒤 아들이 태어났다. 또 잘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어떻게 대충 뛸 수 있겠느냐”며 웃었다.

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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