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오른다’ … 펀드 환매 뭉칫돈, 자문형 랩·ETF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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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내리려던 사람까지 올라타고 있다.” 한 증권사 자산관리사(PB)가 말하는 요즘 ‘강남 부자’들의 투자 성향이다. 코스피지수가 2000포인트를 넘어선 이후에도 연일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자, 펀드 환매에 나섰던 고액 자산가들이 다시 주식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이들은 주식을 직접 사기보다는 ‘목표달성형 자문형랩’과 상장지수펀드(ETF) 등 간접 투자수단을 통해 주식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본지가 주요 6개 증권사 서울 강남 지점의 PB 6명에게 최근 고액 자산가들의 투자 경향에 대해 물어본 결과다.

 ◆인기 여전한 자문형랩=PB들에 따르면 고액 자산가들은 ‘코스피지수가 더 오른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다만 이미 주가가 오른 종목이 많아 종목 선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해 투자자문사가 종목을 골라주는 자문형랩 상품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금융투자 명품PB센터강남의 이윤진 차장은 “원금을 회복한 펀드를 환매하거나 만기가 된 은행 예금 등의 자금이 랩 상품에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자문사를 선택하는 기준은 더 냉정해졌다. 우리투자증권의 임병용 프리미어블루강남센터PB팀장은 “그동안 자문형랩 시장이 춘추전국시대였다면 지금은 대형3사 중심으로 압축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기존에는 자신의 투자 스타일에 맞는 자문사를 골랐다면 지금부턴 그동안 확실한 ‘수익률’을 보여준 자문사만을 골라 투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임 팀장은 “자문사별로 연초 대비 수익률이 50%에 달하는 곳이 있는 반면 시장 수익률을 못 따라 가는 곳이 생기면서 투자 선호에서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투자자들이 자문사만 믿고 나 몰라라 하는 건 아니었다. 동양종금증권의 우선진 금융센터강남대로지점장은 “지수가 높은 만큼 목표수익률을 낮춰 잡은 뒤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면 바로 다른 랩상품으로 갈아타고 있다”고 전했다. 펀드에 대한 ‘아픈 기억’ 때문에 랩 시장도 펀드처럼 시장이 과열된 후 하락할 수 있다고 보고, 자주 갈아타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ELS·ETF는 안전판=추가 지수 상승이 예상되면서 주가연계증권(ELS)과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대우증권 PB클래스 갤러리아점의 윤성환 4센터장은 “자문형랩의 경우 종목이 압축되기 때문에 하나의 종목에서만 크게 손실을 봐도 지수보다 수익률이 더 나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며 “이 때문에 ELS나 대형주 중심의 인덱스펀드를 안전판으로 깔아두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전했다.

  ELS 중에서는 이미 많이 오른 기초 자산보다는 앞으로 오를 가능성이 큰 기초자산을 중심으로 한 스텝다운형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증권 SNI강남파이낸스센터의 류남현 부장은 “건설·금융 업종 등은 이미 충분히 주가가 빠져 앞으로 하락할 가능성보다 상승할 가능성이 더 많다”며 “이들 업종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사모 ELS에 대한 주문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스텝다운형에 대한 선호가 높았다. 류 부장은 “향후 증시가 긍정적이라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앞으로 주가가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텝다운형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환 기준이 내려가면서 수익률이 높아지는 상품이다.

 ETF도 주가 상승 시 안정적으로 수익이 보장되는 점 때문에 인기였다. 하나대투증권 강남WM센터의 권이재 부장은 “특정 종목의 등락에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세금 부담이 없기 때문에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ETF 중에선 삼성자산운용의 코덱스(KODEX)에 대한 선호가 높았다. 윤성환 센터장은 “최근 수익률이 좋았던 코덱스200이나 코덱스삼성그룹, 자동차 ETF 등에 대한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굳히기’ 나선 투자자도=한편 고액 자산가 중에는 대세와는 무관하게 움직이는 ‘나홀로 투자자’도 있었다. 권이재 부장은 “일부는 향후 주식시장에 개인 자금이 흘러 들어오면 중소형주가 빛을 볼 수 있다고 보고 지금부터 이들 주식을 매입하려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또 주식투자를 통해 올해 충분한 수익을 거뒀다고 판단한 투자자들 중에는 적립식 펀드나 채권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우선진 지점장은 “올해 충분히 이익을 실현했기 때문에 이들 자금을 3년 이상씩의 장기 투자에 안전하게 묶어 놓고 싶어하는 투자자도 많다”고 전했다. 우 지점장은 “이 경우 대형주와 중소형주를 적당히 배분한 국내주식형 펀드와 연 5~8%의 확정 금리를 지급하는 채권에 투자를 권한다”고 말했다.

  한편 고액 자산가들은 부동산에 대해선 여전히 관심이 시들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병용 팀장은 “자녀 결혼 등 실수요를 중심으로만 움직이되 그마저 강남 3구에만 집중돼 있다”고 전했다. 윤성환 센터장 역시 “과세 문제가 있는 데다 팔려고 할 때 살 사람이 없기 때문에 유동성이 떨어져 현 시점에선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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