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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기술’ 뿌리내려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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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김후진
대한민국명장(용접 분야)·두산 DST㈜ 품질기획팀

얼마 전 ‘뿌리산업 명장과의 간담회’에서 공로패를 받았다. 64명의 뿌리산업 분야 명장의 대부분은 이미 정년퇴직해 현직에 남아 있는 7명의 명장과 함께 상을 받았다. 간담회에서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뿌리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시켜 일할 만한 업종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일환으로 명장의 기능 장려금을 올림픽 동메달 입상자 수준으로 인상하고, 대를 잇는 뿌리산업 명가를 발굴·지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기능인들에게 부여한 명장 칭호에 더해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는 올림픽 입상자 수준의 장려금까지 준다는 것은 분명 영광스럽고 기쁜 일임에 틀림없다. 위험하고, 힘들고, 더러워서 피한다는 소위 3D 분야에서도 소신을 갖고 자기 길을 걸어 마침내 명장에 이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 또 국가가 그들의 공로를 인정해 보상한다는 것은 기능인들의 사기를 북돋울 일이다.

 그러나 기능인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 전반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은 어려울 것이라는 게 솔직한 내 견해다. 자원이 부족하고 내수시장이 좁은 우리 경제의 힘은 수출에서 나오고, 수출의 90% 이상을 제조업이 견인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사농공상의 뿌리만은 여전해 기능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청년시절과 비교해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가난 때문에 대학 진학을 못한’ 사람에서, 이제는 ‘공부를 못해 대학 진학에 실패한’ 사람으로 바뀌었을 따름이다.

 요즘 한 드라마에서 이탈리아 장인이 한땀 한땀 정성껏 만들었다는 명품 트레이닝복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뿌리산업 명장 칭호를 받은 분들 역시 수십 년간 자신의 분야에서 땀과 열정을 바친 분들이고, 그렇게 이룬 성과들이 핵심 부품으로 혹은 새로운 소재로 채택돼 오늘날 주력산업의 경쟁력을 받치게 됐다고 믿는다. 비록 그 하나하나가 명품 대접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산업계 곳곳을 혈액처럼 흐르며 우리 경제의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지와 보람도 크다.

 뿌리기술은 부품 소재는 물론 자동차, 조선, 전기·전자 등 국가 주력산업의 최종 품질을 결정짓는 핵심 공정기술이다. 기술 축적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열정적이고 솜씨 좋은 인력 확보가 경쟁력의 관건이다. 그런데 20~30대 젊은이들을 구하지 못한 생산현장에서는 갈수록 외국인 비율이 높아져 기술의 맥이 끊길 위험에 처해 있다.

 그나마 내가 용접을 시작할 때에는 국제기능올림픽 수상자들을 환영하는 대대적인 카퍼레이드가 펼쳐졌을 만큼 기능인들을 우대하는 분위기였다. 나 역시 산업역군이라는 자부심으로 기술 연마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고, 그러한 노력들이 알루미늄 용접기술을 접목한 모노블록 개발로 이어져 특허도 따게 됐다. 꾸준히 학업을 병행해 2008년에는 창원대에서 산업시스템공학 박사과정도 시작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을 산업현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기능인으로서의 삶이 좀 더 가치 있고 비전 있는 것이란 희망을 심을 수 있어야 한다. 위험하고, 힘들고, 더러운 작업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능인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다행히 정부가 이러한 내용들을 담은 ‘뿌리산업 경쟁력 강화 전략’을 발표하고 적극 시행에 들어갔다. 지난 13일엔 그 일환으로 ‘뿌리산업 엑스포’도 열렸다. 뿌리산업 강국 일본과의 공동개최로 열린 이 전시회에는 명장들의 작품 전시와 함께 전국 기능경기대회 입상자들에 대한 수상도 이루어졌다. 이러한 노력들이 산업의 뿌리를 튼튼히 다지는 계기가 되고, 이를 통해 장차 미래 경제를 부양할 풍성한 결실들이 맺히기를 고대해 본다.

김후진 대한민국명장(용접 분야)·두산 DST㈜ 품질기획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