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돌아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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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호 10면

언니는 예뻤다. 웃는 얼굴에 친절하고 상냥했으며 서비스도 잘 주었다. 나는 언니가 있는 식당의 단골이 되었다. 회사 근처에 있는 삼계탕 식당 말이다.한동안 회사 근처에는 삼계탕을 하는 집이 없었다. 꼭 복날이 아니라도 가끔 삼계탕이 먹고 싶은데 그건 살다 보면 외롭거나 슬프거나 힘든 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외롭다, 슬프다, 힘들다 이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으니까 대신 땀을 뻘뻘 흘리며 뜨거운 삼계탕을 입으로 후후 불지도 않고 삼키려는 것이다. 삼계탕이 먹고 싶을 때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나는 뜨거운 한낮의 거리에 한참 서 있어야 했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그랬는데 지난여름 사무실 부근에 삼계탕 식당이 생겼다. 삼계탕만 팔았고 너무 비쌌다. 이른바 ‘반계탕’은 팔지 않아서 가난한 월급쟁이가 점심으로 가기엔 부담스러웠다. 만원이 넘는 점심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일하는 언니가 예쁘고 친절하고 상냥한 데다 인삼주 서비스를 잘 준다고 해도 말이다. 점심 때면 그 식당 앞에서 서성대며 지갑을 만지작거리다 돌아서곤 했다. 입안 가득 범람하는 군침을 삼키면서.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그 식당도 반계탕을 팔기 시작했다. 점심 메뉴로 닭볶음탕도 판매했다. 역시 인내는 썼지만 반계탕은 달고 닭볶음탕은 매콤했다. 나는 그 식당의 단골이 되었다. 예쁘고 친절하고 상냥하고 서비스도 잘 주는 언니가 있는 식당의 단골이. 단골의 심사는 심사위원의 심사와 같다. 나쁜 버릇인 줄 알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슈퍼스타 K’의 심사위원처럼 “제 점수는요” 하면서 점수를 매기게 된다. 잠시지만 식당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언니는 일을 참 잘한다. 주방에서 홀로, 홀에서 카운터로, 다시 손님들의 테이블 사이를 지나가는 언니의 몸짓에는 전혀 낭비가 없다. 심지어 우아한 춤 같다.

그런 언니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주인이 바뀐 것일까? 장사가 안 돼 다른 사람에게 넘긴 것일까? 사장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그대로인데. 언니의 부재는 언니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다른 언니는 언니처럼 친절하지도, 상냥하지도 않다. 일을 잘하지도 못한다.불만은 상대적이다. 모두 늦게 나오는 건 참을 만하지만 다른 자리엔 음식이 나오는데 우리만 늦게 나온다면, 그것도 우리보다 늦게 온 사람들에게 더 빨리 나온다면 박탈감은 폭발한다. 나는 클레임과 함께 대안을 제안한다. “인삼주 한잔 주세요.” 다른 언니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건 삼계탕에만 나가는 서비스라서요.”

언니라면 안 그랬을 텐데. 언니는 대체 어딜 갔을까? 언니는 일을 그만두고 공부하러 간 것일까? 아니면 다른 직장에 취직한 것일까? 그 후 그 식당에 몇 번 더 가봤지만 더 이상 언니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 날씨는 춥고 눈발은 날리는데 외롭고 슬프고 힘들기까지 해서 나는 그 식당에 갔다. 그런데 언니가 웃으며 반갑게 맞이하는 것 아닌가. 언니가 돌아온 것이다. 그날따라 손님이 많았지만 언니는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모든 일을 처리한다. 일 전체를 조감하고 그 우선순위를 아는 사람의 여유로운 몸짓. 언니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다. 흐뭇한 표정으로 언니의 움직임을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자 나는 꾹 참았던 인사를 건넨다.
“인삼주 한잔 주세요.”


김상득씨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아내를 탐하다』와『대한민국 유부남헌장』『남편생태보고서』를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일하고 있다. 웃음과 눈물이 꼬물꼬물 묻어 있는 글을 쓰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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