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 Arlington Road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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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든 혹은 사회든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늘 함께 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전부고, 그게 진실이라면 어쩌면 영화란 것도 필요치 않았을지 모른다. 우리는 스크린을 통해 인생의 다른 면을 훔쳐보고 싶어하고, 스크린은 꾸며낸 영상으로 오히려 보이지 않는 진실을 얘기하기도 한다.

한 역사학자가 절친한 친구가 될 뻔했던 자신의 이웃을 조사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음모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는 내용을 그리고 있는 영화 '함정' (원제:Arlington Road)은 음모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가 '범법자' 라 규정한 인물들이 사실은 진실을 은폐하려는 국가의 음모에 의한 희생자일 수있다는 가설이 이 영화를 이끌어간다.

이런 음모이론에 바탕을 둔 영화로는 말그대로 '음모' 라는 뜻을 지닌 '컨스피러시' 를 비롯해 'JFK' '펠리컨 브리프' '왝 더 독' 'X파일' 등이 있다. '함정' 이 이들 영화와 같은 맥락에 있으면서도 다른 점은 이 영화의 원제 '앨링톤 로드' 에 담겨 있기도 하다. '앨링톤 로드' 는 워싱턴 근교 백인 중산층이 거주하는 거리의 이름으로, 영화는 음모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내가 살고 있는 마을로 바짝 끌어당겼다. 겉으론 화목해보이고 평화로운 마을의 내 이웃이 그 평화를 파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을 지 모른다는 상상이 영화적 재미를 불어넣고 있는 핵심요소다.

서로 마주하고 살고 있는 교수 마이클 페러데이(제프 브리지스)와 건축설계사 올리버 랭(팀 로빈스)은 마이클이 올리버의 아들을 사고에서 구해주면서 친한 이웃이 된다. 그러나 올리버가 출신 지역과 학교 등 몇가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이클이 알게 되면서 올리버에 관한 의혹이 커져가고 결국 마이클의 애인이 원인모를 사고로 죽는 사건이 벌어진다.

가장 가까운 이웃의 관계로부터 출발해 '테러리즘' 과 '테러리스트' 를 둘러싼 권력의 역학관계에 초점을 맞춘 이 영화는 누군가를 희생시킴으로서 조직의 평화를 도모하는 음모가 우리 사회에 있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음모와 갈등이 모두 해소된 상황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관습에서 벗어난 결말은 특히 이 영화가 이끌고가는 음모이론에 무게를 더한다.

누가 적이고 아닌지를 알 수 없는 혼돈의 상황, 이어지는 반전을 통해 긴장감을 팽팽하게 살려낸 이 영화의 감독은 MTV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인 마크 펠링턴. U2와 펄 잼.앨리스 인 체인스 등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이력이 스릴러 영화에서 빛을 발하는 점이 오히려 흥미롭다.

팀 로빈스와 제프 브리지스의 열연은 이 영화에서 가장 빼놓을 수 없는 요소. 특히 지적이면서도 친근한 가장의 이미지로 악역을 섬뜩하게 소화해낸 팀 로빈스는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하면서도 사로잡는 매력을 발하고 있다. 1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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