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2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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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김영진, heakwan@ymail.com

밝은 눈 9

불길이 그녀의 집을 오지게 잡아먹고 있었다.
소방차는 비탈길에 세워진 자동차들 때문에 목전에서 접근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불길 속으로 부나비처럼 뛰어들었다. 나에겐 증오로 만든 창(槍)이 있었으며, 그러므로 사랑에의 열망으로 빚은 뜨거운 화살과 전통(箭筒)도 있었다. 지옥인들 가지 못할까, 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린 그녀는 불길이 잡아먹다시피 한 거실 한 귀퉁이에 혼절해 있었다. 그녀를 먼저 둘러업고 나왔다. 현관 일부가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아, 아버지!”
혼절에서 깨어난 그녀가 몸부림쳤다.
나는 내 정신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누구를 말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다만 그녀가 몸부림치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현관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는 불지옥을 그녀는 가리켰다. “가라!”라고 나의 여신이 내게 명령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래서 붙잡는 누군가의 손을 뿌리치고 이번엔 그녀의 아버지를 구하러 다시 불지옥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때마침 도착한 소방차에서 물기둥이 뿜어져 나왔다. 거실 천장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물과 불의 지옥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잠들어 있을 안방 쪽으로 무작정 내닫는데 천장에서 쏟아져 내린 무엇인가가 머리와 어깻죽지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앞으로 코방아를 찧듯이 넘어진 건 그 때문이었다. 불타는 각목 같은 것이 한쪽 눈두덩을 찌르고 들어왔다고 느낀 것과 동시에, 나는 그만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어쩌면 이렇게 기억이 선연할 수 있을까.
떠돌아다니던 시절에는 어렴풋한 이미지들만 단편적으로 떠올랐을 뿐 세세한 것들은 다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기억상실증에 걸렸었던 게 확실했다. 스스로 간절히 잊고 싶었던 기억이기도 했다. 그녀를 구함으로써 나는 그녀를 잃었으며, 나를 잃었고, 급기야는 아버지조차 잃었다. 경찰은 기름을 담아갔던 쇠통이 불탄 집의 안방 부근에 남아 있었다고 했다. 그 통은 아버지가 개를 잡을 때 내장을 담던 것이었다. 명백한 증거였다.

“불어, 이새꺄. 그 집 아저씨 죽이려고 불 지른 거, 다 알고 있어.”
경찰은 시시때때 뺨을 치고 발길질을 했다. 그녀의 아버지에게 맞을 때 ‘확 싸질러버릴 거야!’라고, 내가 소리치는 걸 분명히 들었다고 증언한 사람까지 나왔다. 불이 나기 직전에 그 집에서 뛰쳐나온 청년이 관음봉 정상 쪽으로 짐승처럼 뛰어 달아나는 걸 본 사람도 나왔다. 대질을 하자 그 사람은 반신반의했다. 경찰은 ‘반신반의’가 아니라고, 증언은 나를 지목했다고 여기고 싶은 눈치였다. 동네 사람 모두 한통속이었다. 사람들은 나나 아버지를 방화범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내가 고개를 저으면 경찰은 사정없이 발길질을 날렸다. “너 산도 잘 탄다지? 이 개백정새끼!” “증거도 다 나왔는데 오리발을 내밀어?”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마구 으르렁거렸다. 그녀는 물론 만날 수조차 없었다. 불을 질러 아버지를 죽게 한 장본인이 나라고 굳게 믿고 있을 그녀였다. 소식도 물어볼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끝내 5년형을 선고받았다. 불과 스물을 갓 넘기면서 겪었던 일이었다.
차라리 10년이나 종신형을 받지 않은 것이 한이었다.

그날 불구덩이 속에서 나를 끄집어낸 소방관이 원망스러웠다. 그 속에서 죽었다면 그후의 고통은 면제받았을 것이었다. 아버지가 죽은 것은 그 이듬해, 내가 감옥에서 얼굴이 흉측하다는 이유로 같은 수인들에게 뭇매를 맞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는 개를 매달던 은행나무에 개를 매달던 기름기 반지르르한 가죽 끈으로 당신 자신의 목을 매달았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이해했다. 내가 감옥에 간 후에 아버지는 평생의 직업이었던 개를 더 이상 키울 수 없었다. 살 길이 없었다기보다 할 일이 없어졌다는 게 아버지에겐 더 치명적이었을 터였다. 아버지가 그동안 살아온 이유는 전적으로 내게 있었다. 방화범으로 몰려 내가 감옥에 가고 나서 아버지로선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을 게 뻔했다. 아니 진즉부터 아버지는 죄 많은 당신을 처벌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안주 없이 소주를 일곱 병이나 마시고 나서 개처럼, 당신의 목을 은행나무에 단호하게 매달았다. 당연한 형벌이었다. 목을 매달고, 몽둥이로 두들기고, 불로 태우는 삼 단계를 거쳐야 개고기가 더 쫄깃해지고 맛있어진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해달라고 요구해서 아버지로선 도리 없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형벌을 받아야 한다면 그건 전적으로 아버지 몫이었다. 목매단 아버지에게 사람들이 달려들어 몽둥이질을 하고 불태우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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