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용,병든 부모 모시는 효자레슬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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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전한 자유형 세계 레슬링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우용(28.평창군청)은 병든 부모를 직접 모시고 있는 효자.

김우용은 태릉선수촌을 떠나 고향 평창에서 훈련할 때는 운동이 끝나자마자 부모에게 밥을 지어드리는 등 수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숙소생활이 불가능하다.

아버지 김점보(63)씨는 태어날 때부터 왼손 손가락이 없는 조막손으로 막노동이 주업.

흙집을 지을 때 미장공으로 가족을 돌보면서 정부지원이 필요한 생활보호대상자였으나 몇년전부터는 일거리도 줄어들고 몸도 좋지않아 중단했다.

게다가 2년전 어머니 권점순(55)씨마저 중풍으로 쓰러져 반신불수.

또 `움막'에서 기거하던 가족들은 `주인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남자가 나타나 집을 비워달라는 통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또 다른 빈집을 찾아 다녀야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포항에 살고있는 형이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그나마 얼마되지도 않은 전재산을 날려버렸고 김우용은 60만-70만원밖에 안되는 월급을 쪼개 두집 살림을 도왔다.

김우용이 레슬링을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때.

당시 평창중 레슬링팀을 지도하고 있던 이건환(42) 평창군청감독이 새벽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다 신문배달을 하고 있는 김우용을 발견했고 그의 골격이 레슬링에 적격이라고 판단, 레슬링을 할 것을 권유했다.

"나도 레슬링을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던 김우용은 이듬해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이건환감독을 찾아 힘든 레슬링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선천적으로 착하고 성실한 김우용은 평창중-평창고-용인대-평창군청을 거치면서 기량을 닦았으나 레슬링의 세계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정순원(삼성생명), 문명석, 김선학(이상 주택공사) 등 같은 체급에서 뛰어난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많아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이번 대회전까지 국가대표 2진 자격으로 캐나다컵 등에 출전한 것이 고작이었다.

가정형편이 매우 열악한 데다 국제대회 출전기회조차 잡지 못한 김우용은 운동을 그만 둘 고민에도 여러 번 빠졌었다. 그 때 마다 이건환감독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해 매트를 떠나지 못했고 마침내 지난 7월 국가대표선발전에서 문명석 등 라이벌을 제압하고 태극마크를 달았다.

금메달이 확정되자 마자 이건환감독에게 전화해 눈물을 쏟으며 고마움을 전한 김우용은 이제 2000년시드니올림픽 금메달을 향해 달리고 있다 (서울=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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