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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힘’의 국제정치 보여준 조지 워싱턴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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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석수
국방대 교수

북한이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이래 최초로 대한민국의 영토와 그곳에 살고 있는 무고한 민간인을 표적으로 야만적 포격을 감행했다. 이번 북한의 공격은 대한민국 영토의 보전과 국민의 생존 문제에 심각한 위협을 제기하고 있다. 북한의 비이성적 군사도발에 대한 한국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 한국은 국민의 생존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할 시점이다. 국민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고는 그 어떤 국가 목표도 공허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9월 당대표자회를 시작으로 부자 권력 승계 과정에 본격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김정일 부자가 최후로 의지할 수 있는 자산이 군사력, 즉 대남(對南) 비대칭전력이라는 사실이 이번 연평도 포격을 통해 여실히 입증되었다. 북한은 최근 핵개발 프로그램의 진전을 공표하는 한편, 재래식 비대칭전력을 활용해 한국을 포격했다. 북한 김정일 정권의 생존과 성공적 권력 승계를 위한 비대칭전력의 핵심적 역할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권력 승계 과정에서 북한의 군사도발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북한은 아무런 두려움과 제약 없이 대한민국의 그 어떤 표적도 무자비하게 공격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한국이 북한의 재래식 군사도발에 대해 강력한 ‘억지력’을 유지할 때, 북한은 군사도발의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군사적 억지력이란 적이 상대방의 보복 공격에 따른 파멸 공포로 인해 공격을 감히 단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능력과 의지로 정의할 수 있다. 사실 억지력이 능력만으로 구축되지는 않는다. 능력에 못지않게 의지가 중요하다. 아무리 강해도 보복할 의지가 없으면 적의 공격적 유혹과 행동을 제어하기 어렵다. 지난 11월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서해에서 실시된 한·미 군사훈련은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하는 군사적 조치로 파악할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은 이 훈련을 통해 북한에 연합 보복 전력의 위용을 충분히 과시하는 한편, 상시라도 북한의 도발에 대응할 수 있다는 불굴의 의지를 표명했다고 본다. 혹자에게는 조금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으나, 매우 제한적·군사적 대응방안을 가지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 볼 때 한·미 간에 신속하게 기획되고 실시된 이번 훈련은 적절한 군사적 조치였다.

 이번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는 조지 위싱턴함의 참여로 그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조지 워싱턴함의 함장은 한·미 연합전력의 지속력, 대비태세, 그리고 상호 운용성을 높이기 위해 훈련에 참가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미국 관리는 한·미 연합훈련이 북한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이번 훈련은 북한의 추가 도발을 저지하기 위해 한·미 연합 억지력과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고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고 본다. 더욱이 조지 워싱턴 항공모함이 보유한 막강한 전력 때문에 중요한 전략적 파급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번 조지 워싱턴함의 서해 진입은 중국 해군의 ‘접근 거부(anti-access)’ 전략과 미국의 ‘접근(access) 전략’이 충돌하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다. 전략적으로 중국은 미국에 안방을 내놓는 셈이 되었다. 중국은 갑자기 외교담당 국무위원 다이빙궈로 하여금 한국을 방문하게 했고 북한을 방문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북한 관련 문제에 이렇게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는 조지 워싱턴함의 ‘힘’이 작용한 결과다. 이제 중국은 조지 워싱턴함의 서해 출몰을 거부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군사도발을 적극 말려야 할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북한 다루기’가 중국 해군이 추구하는 ‘접근 거부’ 전략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북한의 계속되는 나쁜 행동으로 다시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힘’의 국제정치가 부활하고 있다. 평화적 수단에 의해 평화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북한이 가장 효과적인 정책 수단으로 군사도발에 미련을 버리지 않고 한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한, 한국 안보의 전제조건인 강력한 대북 군사 억지력을 유지하는 데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한국이 강력한 안보태세를 유지할 때 다양한 대북정책이 효과적이고 생산적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석수 국방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