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놀이경계 허무는 전자우편 세상

중앙일보

입력

전자우편(e메일)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지난달 한주간의 휴가를 마치고 귀가했을 때 전자우편 수신함에 1천2백18통의 미개봉 메시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진부한 사무실 잡담, 스팸 메일(일방적인 광고성 우편), 논쟁, 할 일 없는 친구들이 전달한 조크, 그리고 기타 잡다한 전자우편을 빼고나면 실제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7개 정도에 불과하더라는 사실은 일단 접어두자. 쓰레기 우편물을 삭제하는 데 한나절을 허비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반면 그 일곱 개의 메시지는 어떤 내용인가.
5년간 만나지 못한 타이베이(臺北)의 한 친구가 아기를 가질 계획임을 알리는 메시지, 얼굴도 보지 못한 한 벨기에 사람이 보낸 눈에 번쩍 뜨이는 기사 자료, 또다른 낯선 사람이 보낸 일자리 제의….

전자우편에 시달리는 삶도, 전자우편이 없는 삶도 상상하기 어렵다. 사기꾼·예술가·광고업체·자유의 투사·연인·앙숙들은 새 표현매체가 등장하면 늘 그렇듯 모두 전자우편으로 몰려들고 있다. 전자우편은 간편하고 시간을 절약해주며 사람들간의 거리를 좁혀주는가 하면 복잡한 삶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해준다.
저술·캠페인·범죄 등 모든 것이 전자우편을 통해 이뤄진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불편하고 시간을 빼앗으며 사람을 컴퓨터 앞에 고립시키는가 하면 이미 지친 우리의 삶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전자우편이 인류 통신 발달사의 한 장에 불과하다는 회의론도 있다. 부인 뒤를 캐던 남편이 그녀의 사적인 전자우편을 통해 아내의 부정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한 세대 전에도 우편물을 뒤적이면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우편을 비롯한 온라인 통신은 사실 그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전자우편은 거의 다른 디지털 기술상품의 추종을 불허하는 권위를 띠며 20세기 말의 인생이 지닌 본질을 함축하고 있다. 전자우편은 그처럼 빠른 변화에 대처할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가속화를 부추기기도 한다.

범세계적인 인터넷의 등장이 금세기 후반의 가장 중요한 기술혁신 중 하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인터넷을 통한 인적 교류의 산 증거물인 전자우편에 최고의 영예를 수여함이 마땅하다. 인간의 교류방식은 변화하고 있으며 전자우편이 그런 변화의 촉매제이자 도구 역할을 하고 있다.
그와 같은 현상의 범위는 가위 상상을 초월한다.

(필자는 Salon.com의 기술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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