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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국에 단비 ‘물 랜드마크 사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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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박대원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원조 선진국의 대열에 오른 지도 어느덧 일 년이 흘렀다. 원조를 받던 나라가 반세기 남짓 지나는 동안 눈부신 발전을 일궈내더니 마침내는 원조 선진국들만 가입한다는 DAC에 들어간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에 걸맞은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얼마 전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때 ‘개발의제’를 제안한 바 있고, 내년 11월에는 세계적인 규모의 원조 효과 고위급 포럼(HLF) 제4차 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한다. 또 대한민국의 원조 활동 성공사례들이 주변국들 사이에 많이 알려지자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나라들로부터 잇따른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달 우리 정부는 개도국에 대한 대외 원조 규모를 2015년까지 국민총소득(GNI) 대비 0.25%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제개발협력(ODA) 선진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제사회에서 대외 원조의 핵심 화두로 떠오른 것은 단연 기후변화와 이에 따른 대응 문제다. 전 세계는 지금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는 다양한 유·무상 대외 원조를 통해 필리핀·몽골·인도네시아 등 기후변화로 인해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나라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은 급격한 인구 증가와 더불어 농업 등 물을 필요로 하는 1차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데 비해, 기후변화가 야기하는 물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몽골은 지난해 겨울에 몰아 닥친 한파로 인해 가축들이 폐사하면서 유목민들의 도시 유입이 대거 늘어 주민들의 물 부족 문제가 새롭게 대두하고 있다. 70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필리핀도 기후변화로 인한 평균기온 상승으로 지표수 증발량이 늘고, 극심한 가뭄마저 겪으면서 수확량이 급감, 식량위기에 직면해 있다.

 필리핀과 몽골뿐 아니라 기후변화는 이미 전 세계 도처의 물 부족 문제를 심화시키는 대표적인 요인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해 오는 2080년까지 물 부족 때문에 추가로 고통받게 될 사람이 무려 약 18억 명에 이를 것이며, 이는 농업과 환경에도 심각한 위협 요인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엔 차원에서 다양한 국제회의를 통해 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확산과 개도국의 물 부족 문제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특히 OECD의 DAC 회원국들은 개도국들이 겪는 물 자원 확보의 어려움에 공감, 지난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수자원 공급 및 수질 관리를 위해 양자 간 원조를 해마다 19%씩 늘려나갔다.

 우리나라도 지난달 필리핀과 몽골, 그리고 아제르바이잔 지역의 안정적 물 공급과 재난 방지를 위해 물 분야의 무상 대외 원조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물 랜드마크 사업’ 추진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지난 2008년 아시아 개도국들의 기후변화 대응 역량 강화와 녹색성장을 돕는다는 취지로 한국국제협력단이 수행하고 있는 ‘동아시아 기후 파트너십’의 일환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물 랜드마크 사업’은 물 부족 문제 해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한편, 한국의 물 관리 경험과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프로젝트다. 원조 수혜국과 우리나라 간 의미 있는 협력 모델로 발전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국제사회를 돕는 일에 적극 나서고 있는 대한민국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러면서 할 일도 많아졌다. 아직 선진국처럼 맏형 역할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어려웠을 때 남이 우릴 도운 것처럼 지금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박대원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