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도 ‘자칭 만수르’에 깜빡 속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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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최근까지 가짜 탈레반 지도부와 엉터리 평화협상을 벌였으며 이는 영국 해외정보국(MI6) 등 서방 정보기관이 탈레반 지도자를 자처한 인물에 속아서 생긴 일이라고 영국 더타임스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프간 정부는 지난 3월부터 탈레반 2인자인 아크타르 무하마드 만수르를 사칭한 남성과 평화협상을 진행했다. 그러던 중 지난달 진짜 만수르를 만났던 아프간 정부 관리가 의문을 제기했고 ‘자칭 만수르’는 돌연 자취를 감췄다.

 문제의 남성을 아프간 정부에 소개시킨 기관은 MI6였다. 더타임스는 “MI6 요원들은 자신들이 만수르와 만났다고 믿었고 그에게 50만 달러(약 5억7000만원)에 가까운 돈을 주며 협상에 나설 것을 설득했다. MI6는 이번 일이 ‘역사적 돌파구’라고까지 확신했다”고 전했다. MI6는 이 남성을 영국 정보기관 수송기에 태워 수차례 카불로 데려가기도 했다. 카불에 간 가짜 만수르는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과 면담도 했다. 아프간 정부 고위 관계자는 “영국 정보기관이 순진했고 우리도 희망을 품었다”고 말했다.

 신문은 또 전 아프간 미국 특사 빌 해리스의 말을 인용해 “미국 중앙정보국(CIA)도 가짜 만수르의 신원을 확인하는 작업을 맡았다. 이번 일은 MI6만이 아닌 (서방 전체의) ‘합작품’”이라고 전했다. 익명의 소식통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수염을 기르고 터번을 쓴 탈레반 지도자와 다른 사람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며 “아프간 당국이 실수를 지적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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