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국은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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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독 안에 든 쥐를 잡으려면 독이 우선 튼튼해야 한다. 독이 부실하면 쥐 잡는 몽둥이에 독이 먼저 깨질 수 있다. 구멍이 있어서도 안 된다. 코너에 몰린 쥐가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구멍 없는 단단한 독’은 쥐를 잡기 위한 선결 조건이다. 우리 영토에 대한 북한의 무차별 포격으로 군인은 물론이고 민간인 사상자까지 발생했다. 대북(對北) 응징을 위해 독이 튼튼한지 살피는 것은 우리가 할 몫이다. 문제는 구멍이다. 지금 대북 응징 전선(前線)에는 심각한 구멍이 뚫려 있다. 중국이다.

 아무리 북한을 몰아붙이더라도 중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응징은 고사하고, 재발 방지도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연평도 사태와 관련해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중국에 책임 있는 역할을 촉구하고 있는 이유다. 중국은 대국(大國)이다. 대국이면 대국답게 처신할 때 존경과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멀쩡한 우리 수병(水兵)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사태 때도 중국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번에도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오늘 서울에 오기로 돼 있던 양제츠(楊潔篪) 중국 외교부장이 돌연 방한을 취소했다. 곤혹스러운 입장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고, 곧 실시될 미 항모(航母) 조지 워싱턴호(號)의 서해 훈련에 대한 항의 표시라는 해석도 있다. 어느 쪽이든 당당하지 못하다. 북한의 무력도발이 100% 확실한 연평도 사태의 진상을 외면하려다 보니 처신이 옹색해지는 것이다.

 연평도 사태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어떤 행동에도 반대한다”며 남북한 양측에 냉정과 자제를 촉구했다. 미 항모의 서해 훈련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백주대낮에 깡패에게 맞아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말고, 무조건 참으라는 소리다. 일단 때린 쪽을 나무라고 나서 자제를 촉구하는 것이 상식이고 순리다. 천안함 사태 때도 중국은 사건의 진상을 외면하고 북한을 두둔했다. 핵개발과 직결된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란 듯이 공개했는데도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 표명에서 대북 비난은 한마디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 북한이 갈수록 대담해져 멀쩡한 민가에 포탄을 퍼붓는 막가파식 도발까지 하는 것 아닌가. 연평도 사태에 대한 간접적 책임에서 중국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시각도 있음을 베이징의 지도자들은 유념해야 한다.

 중국은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경제적 지렛대를 가진 유일한 나라다.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그 지렛대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중국이 작심하고 막는다면 어떻게 우라늄 농축 시설 건설에 필요한 물자가 북한 땅으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이번 연평도 사태는 전면전(全面戰)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일으킬 수 없는 계획된 도발이었다. 한국이 자제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전면전으로 비화할 수도 있었다. 문제는 북한이 또 다시 도발을 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일어나면 중국도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최악의 경우 미국과 전쟁까지 각오해야 한다.

 그런 사태를 원치 않는다면 이제라도 중국은 북한의 손목을 비틀어야 한다. 일체의 도발을 중단하고, 진정한 비핵화 의지를 갖고 협상 테이블에 나오도록 다그쳐야 한다. 중국식 개혁·개방만이 살길임을 평양에 주지시켜야 한다. 그것이 대세를 읽는 대국의 태도이며, 중국 자신의 국익에도 부합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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