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우리의 주적 … 나라가 강하고 원칙 있어야” 32세 주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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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연평도 공격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과거 어느 때보다 격앙돼 있었다. 교과서에서만 봤던 전쟁의 참혹함을 피부로 느꼈고, 그로 인해 국가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으며, 북한이 국민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것도 실감하게 됐다는 의견이 많았다. 북한 공격으로 전사한 병사가 우리의 가족일 수 있다는 데 대한 분노와 슬픔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았다. 특히 시민들은 북한 공격 뒤 청와대의 방침이 오락가락했던 것을 지적하며 “정부부터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분노했다.

◆배화여고 1학년 이하영(16)양

 그동안 6·25전쟁에 대해 많이 배웠다. 하지만 자세히 알지 못했다. 솔직히 23일까지만 해도 연평해전에 대해 알지 못했다.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친구들과 연평도가 어디 있는지 찾아봤다. 그곳은 북한과 너무나 가까운 곳이었다. 처음으로 분단국가라는 우리의 현실을 실감했다. 전사한 군인들은 우리 또래의 오빠뻘 되는 사람들이었다. 왜 그 사람들이 죄 없이 죽어야 하나. 어젯밤엔 너무 무서웠다. 방과후 집에 가는 길에 차가 쌩쌩 지나가는 소리에도 겁이 날 정도였다. “전쟁이 나면 오늘이 마지막 종례가 될 거다”는 친구들의 말이 생각났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전쟁만은 없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건국대 2학년 황재성(20·응용통계학)씨

 내년 1월 입대한다. 전사한 병사들은 내 또래다. 그들의 목숨을 돈으로 보상할 순 없을 것이다. 부모님도 많이 불안해하신다. 군대에 있는 친구들과 통화했다. 비상이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도 이제 이 땅을 지켜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고교 시절엔 못 했던 생각이다. 북한의 군사력이 만만치 않은 걸 보면 엄청나게 많은 돈을 투자했다는 얘긴데, 북한 사람들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정부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해 방관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전쟁이 나면 우리 피해가 더 클 테니까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주부 권경진(32·충남 아산)씨

 화염과 연기를 보고 우리나라가 아닌 줄 알았다. 다른 나라에서 테러가 났나 싶었다. 북한의 공격이란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에 들어갔더니 루머들이 많았다. 심각한 문제다. 아직까지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 맞지 않나. 우리를 제일 불안하게 만드는 게 북한 아닌가. 세 살배기 딸이 있다. 전쟁 상황도 무섭지만 이런 인터넷 환경도 딸에겐 무서운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런 거 잘 모른다. 애가 잘 클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제일 중요하다. 평화를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북한에 끌려가는 정부가 아닌, 강하고 원칙 있는 국가였으면 좋겠다.

◆해병대 예비역, 가수 김흥국(51)씨

 가슴이 너무 아파서 잠이 안 와 어젯밤 한잔했다. 후배들 다치고 죽는 게, 우리 땅에 포탄이 떨어지는 게 내 몸이 다치고 죽는 것처럼 아팠다. 집에 군복이 걸려 있는데 당장이라도 입고 ‘세무(섀미) 군화’를 신고 달려가고 싶었다. 오늘 양아들 이정(가수·해병대 전역)과 후배들 조문 가려고 준비 중이다. 해병대는 군 기강의 근간이다. 이렇게 당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러다 군의 사기가 떨어질까 걱정이다. 자식을 군대 보낸 부모들 다리 뻗고 못 잔다. 항상 흐지부지 넘어가는데, 이번에는 안 된다.

송지혜·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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