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사다리 먼저 올라 … 불길 속 시민영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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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2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발생한 건물 화재 사건은 용기 있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남기형(41·사진)씨는 소방관보다 먼저 구조용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창문을 깨 피해자의 탈출을 도왔다. 소방 인력이 닿지 않는 건물 뒤편에선 박우순(50)·송병훈(54)씨가 함께 건물에 갇힌 피해자 10여 명을 밖으로 꺼내기도 했다. 하지만 시민들이 화재 현장에 접근할 동안 현장에 있던 소방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과 소방 당국에 따르면 김모(49)씨가 전 부인의 직장 사무실을 찾아 분신자살을 벌인 시간은 오후 4시50분쯤. 이 건물 맞은편에 있는 보광훼미리마트 본사에서 근무 중이던 PDS 개발 팀장 남기형씨는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동료들과 현장으로 달려갔다. 잠시 뒤 소방차 한 대가 도착했다. 소방차 위에 사다리가 펼쳐졌다. 하지만 남씨에 따르면 소방관들은 바로 사다리로 올라가지 않았다. 남씨는 “불을 끄느라 바쁜 듯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3층 창문에 몰려 “살려 주세요”라고 외치던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점차 사그라졌다. 이를 지켜보던 그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 사다리를 기어올랐다. 그리고 들고 올라간 휴대용 소화기로 유리창을 깼다. 이 창문으로 5~6명이 무사히 빠져나왔다.

22일 서울 삼성동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이 고가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다. [MBC 뉴스 화면 캡처]

 ◆소방 당국 “ 용감했지만 위험 ”=23일 소방 당국은 “절차에 맞게 진화·구조작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강남소방서에 따르면 소방방재센터로부터 출동 지시를 받은 오후 4시53분 소방차 및 구급차를 출동시켰다. 화재 현장 인근에서 다른 작업을 마치고 소방서로 돌아오던 다목적 펌프차 한 대가 56분 현장에 먼저 도착했다. 사다리 운전 담당 소방관이 리모컨으로 사다리를 펴는 동안 3명의 소방관은 소방호스를 가지고 건물 내로 진입했다. 그런데 이때 사다리가 채 고정되기도 전에 남씨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는 게 강남소방서 측의 설명이다. 강남소방서 관계자는 “사다리가 고정되기 전에 남씨처럼 올라가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다리로 왜 소방대원들이 바로 올라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각도 등을 고려해 적합하게 사다리를 전개하는 데 3분여가 걸리기 때문에 그 시간을 이용해 나머지 대원들이 소방호스를 들고 옥내로 진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병원으로 이송된 28명의 피해자 중 유모(61·여)씨가 이날 오전 유독가스 질식으로 숨져 사망자는 총 4명으로 늘었다.

송지혜·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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