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G20 절정 때 헤커 불러 핵능력 과시 … 북, 전세계를 상대로 충격 극대화 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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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외부 세계에 처음으로 영변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했던 지난 12일은 핵심 국가 정상과 국제기구 수장 등 전 세계 33명의 수장이 서울에 모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을 진행하던 날이었다.

20일(현지시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영변 핵시설 방문 보고서를 공개한 미국 핵 전문가 시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C) 소장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등 지구촌의 정치·경제를 좌우하는 정상들이 G20 정상회담의 마지막 날인 이날 회담의 하이라이트인 ‘서울 선언’을 내놓을 때 북한은 시그프리드 헤커 미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을 통해 국제 사회에 ‘농축 우라늄 핵 능력’을 과시했다. G20을 앞두고 정부는 북한의 테러 위협이나 군사적 긴장 조성 가능성을 우려했지만 북한은 예상치도 못했던 다른 방식으로 미국과 남한을 비롯한 전 세계에 충격을 주려 시도한 셈이다.
 
북한은 과거에도 국제사회를 상대로 ‘거사’를 치를 때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술을 써 왔다. 지난 2006년 7월 5일 새벽 북한은 함북 화대군 무수단리에서 대포동 2호 장거리 미사일을 태평양으로 쏘아 올렸다. 이날은 미국의 독립기념일(7월 4일)이었다. 북한 장거리 미사일이 발사되던 시각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 인근에선 독립선언문 낭독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당시 미 언론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점을 놓고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내놓은 바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006년 7월 5일자 기사에서 애슈턴 카터(현 국방부 차관) 하버드대 교수를 인용, “(북한이)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이런 도발을 한 것은 매우 노골적이다. (미사일 발사가) 실패했다니 만세(hooray)다”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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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3년 후인 2009년 7월 4일에도 미국 독립기념일을 즈음해 강원도 원산 인근의 깃대령 미사일 기지에서 동해로 중거리 노동 미사일 등 7발을 쐈다. 2008년 8월 외무성 성명이라는 최고 수준의 발표로 ‘핵 불능화 조치 중단’을 선언할 땐 미국 대선의 가늠자인 민주당 전당대회가 시작되는 날인 25일(한국시간 26일)을 선택했다. 불능화 조치는 그달 14일 이미 중단하고도 발표까지 12일을 기다렸다.

 국방연구원의 백승주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22일 “이번 우라늄 농축 시설 공개도 북한이 날을 택했다고 봐야 한다”며 “우리는 외부 압력에 굴하지 않고 핵보유국으로 갈 것이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기반 위에서 미국 등 국제사회와 협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북한은 이번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하며 시점을 치밀하게 계산했다고 봐야한다”며 “국제사회에 맞서 북한이 제시할 수 있는 카드가 있음을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보여주려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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