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열매’ 쪼갤까, 조일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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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비리가 불거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개선 방안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모금 기관 복수화다. 지금은 공동모금회가 유일한 법정 기관인데 이런 걸 하나 또는 그 이상 더 만들자는 것이다. 지난달 공동모금회의 비리가 일부 드러나자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모금기관을 복수화하겠다”고 하면서 논란을 불러 왔다. 국감 동안 여야 공방이 이어졌고 이번에 ‘비리 종합판’이 나오면서 복수화 논의가 탄력을 받고 있다. <본지 11월 22일자 8면>

 복수화 찬성 쪽은 경쟁을 통해 모금액을 늘리고 투명성을 기하자고 주장하지만 반대 측은 기관을 늘리면 관리비가 증가하는 등 부작용이 많기 때문에 지금의 공동모금회를 개혁하는 게 낫다고 맞선다. 복수화 논란에는 이념 갈등이 깔려 있다. 1998년 진보적인 사회단체와 학자가 주축이 돼 ‘정부 간섭 배제’를 원칙으로 지금의 공동모금회를 만들었는데 그런 배경이 이념 대립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초 복수화 주장은 2년 전 시작됐다. 한나라당 손숙미·심재철 의원이 2008년 말 모금기관 복수화를 담은 법안을 잇따라 발의했다. 손 의원 안은 모금기관 심사 위원장을 보건복지부 차관이 맡고 5년마다 재심사를 받도록 해 정부 통제를 강화했다. 이에 맞서 민주당 최영희 의원은 지난해 2월 단일기관을 유지하되 이사추천위원회 신설 등 내부 개혁을 담은 법안을 냈다. 민주당은 지난해 4월 복수화 반대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손 의원실 변준혁 비서관은 “경쟁 체제 전환을 받아들이지 않아 이번에 사고가 난 것”이라며 “경쟁이 없다 보니 기업 위주로 편하게 모금했고 투명성에도 문제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서인환 사무총장은 “모금회 직원이 특정 사업의 배분위원회 상정 여부를 결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며 “모금기관을 다변화하고 공동모금회는 정리·조정 역할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복지재단 이성규 이사장은 “영역별·지역별로 수많은 개발 펀드가 경쟁적이고 창의적으로 운영하도록 문호를 열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 주승용 의원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98년 공동모금회로 통합한 이유는 모금기관 난립으로 인한 운영비 낭비, 관리감독 애로 때문”이라며 “정부가 4대 강 사업으로 복지예산을 증액하지 못해서 모금회를 하나 더 만들어 국민성금을 예산처럼 활용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복지학계의 반대도 강하다. 서울대 조흥식 교수는 “큰 풀(pool)에서 모금이 돼야 체계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며 “다원화될 경우 여러 단체의 요구 때문에 기업 부담만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한나라당과 입장을 같이 한다. 손 의원 안의 발의를 도왔다. 기획재정부는 10월 일정 요건을 갖추면 전문모금기관으로 인정해 공동모금회와 같은 세제혜택을 주는 ‘복수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보건복지부는 복수화가 안 되면 의료구제공동모금회를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복수화와 다름 없어 민주당의 반대를 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신성식 선임기자·홍혜현 객원기자(KA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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