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제는 우라늄 핵으로 불장난하려는 북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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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북한이 다시 한번 핵 위협에 나섰다. 지난주 북한을 방문한 미국의 핵과학자 시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에게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여준 것이다. 헤커 소장에게 북한은 2000개의 원심분리기를 가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1년에 핵무기용 고(高)농축 우라늄 20㎏ 이상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북한은 영변에 건설 중인 25~30MW급 실험용 경수로가 저(低)농축 우라늄 생산시설이라고 밝혔다지만, 이를 믿을 사람은 전 세계에 아무도 없다. 3~5% 수준의 저농축 우라늄 생산을 위해 대규모 농축시설을 만들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한 손으로는 민족 운운하며 남측에 각종 지원을 요청하면서, 다른 손으론 민족공멸을 초래할 수 있는 불장난에 이토록 매진하는 평양지도부의 이중성이 정말 가증스럽다.

 북한은 핵을 개발하면서 지난 수십 년 동안 국제사회를 철저히 기만해왔다. 1950년대부터 플루토늄 핵폭탄 개발을 추진해온 북한은 이를 철저히 부인하다가 뒤늦게 미국과 협상에 나서 1994년 핵개발 중단을 약속했으나 2006년과 2009년 기어이 핵실험을 감행했다. 그 결과 현재는 8~12기의 플루토늄 핵폭탄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우려는 이미 15년 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북한은 이를 줄곧 부인해왔다. 2002년에는 북한을 방문한 미국 특사에게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없다고 발뺌하면서 미국의 압박을 빌미 삼아 이듬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을 추방하기도 했다. 2008년 영변의 흑연원자로 냉각탑 폭파도 국제적 쇼이고, 북한은 이미 그 이전부터 우라늄 농축을 본격 추진해왔다는 사실이 이번에 입증됐다.

 앞으로 수년 안에 북한이 무기급 우라늄을 다량 보유하게 되면 북한의 핵 위협 강도는 지금까지보다 현저히 높아진다. 우라늄 핵폭탄은 상대적으로 만들기가 쉽고 미사일 이외에 야포 등 다양한 형태의 투발(投發) 수단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라늄 농축시설은 은폐가 쉬워 감시도 어렵다. 게다가 북한은 몇 달 전 핵융합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함으로써 수소폭탄 개발도 시사한 바 있다. 수소폭탄은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일반적인 핵폭탄보다 위력이 수십~수백 배 강하다.

 우라늄 농축은 모든 핵무기 개발을 금지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를 북한이 정면으로 위반한 결정적 증거다. 국제사회를 상대로 위험천만한 핵 위협을 거듭하는 북한의 이 같은 행패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되는 이유다.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한 더욱 강력한 제재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중국이 북한의 막가파식 행동을 더 이상 비호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핵무장은 중국이 지금까지 수도 없이 강조해온 ‘한반도의 평화’를 결정적으로 훼손하기 때문이다. 동북아의 핵 도미노를 바라지 않는다면 기존의 뜨뜻미지근한 대북 제재에서 벗어나 석유와 식량 공급의 전면 차단 등 강력한 압박을 구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