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표류하는 교육법안, 교육개혁 발목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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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교육정책의 근거가 되는 교육법안들이 국회에서 표류(漂流)하고 있다. 국회에 제출된 지 1~2년이 넘도록 여야의 소모적인 힘겨루기 탓에 법안이 상임위(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거나, 심사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 법안들은 교육경쟁력 제고와 사교육비 절감 같은 우리 교육이 시급히 풀어야 할 핵심 교육개혁 과제와 직결돼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국립대를 법인화하고 부실 사립대를 구조조정해 대학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법안들이 그렇고, 초·중등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교원평가제 도입 법안이나 학원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법안 또한 그렇다. 하나같이 중요한 법안들이다. 마냥 처리가 지연되거나 좌초(坐礁)된다면 교육개혁 또한 물 건너간다.

 교육문제는 정치논리가 아니라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접근해야 하는 사안이다. 정이사 체제로 전환한 상지대 문제나 민주노동당 가입 전교조 교사 징계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현안을 놓고 여야가 다투느라 교육법안 논의가 뒷전이 돼선 곤란하다. 일단 법안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치열한 찬반 논의부터 벌여야 옳다. ‘국립대학법인 서울대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만 해도 그렇다. 서울대를 특수법인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이 법안이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됐는데도 1년이 다 되도록 교과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국회가 이처럼 직무유기(職務遺棄)를 해도 되는 건가.

 대학의 국제경쟁력 확보가 절실한 상황에서 서울대 법인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정부 산하기관인 국립대 체제에선 교수 한 명을 뽑는 것에서부터 연구 조직을 하나 신설하는 것까지 일일이 법령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 이래서야 어떻게 세계 일류 대학과 경쟁할 수 있겠는가. 선진국 대부분의 대학처럼 법인 전환이 불가피하다. 정부의 통제와 감독에서 벗어나 대학 운영을 자율적으로 하게 됨으로써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여야는 서울대 법인화가 선례가 돼 다른 국립대의 법인화 추진도 탄력을 받도록 법안 심사를 서둘러야 한다.

 부실 사립대 구조조정을 위한 ‘사립학교법’과 ‘사립대학 구조 개선의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도 마찬가지다. 지원자보다 대학 모집정원이 많은 ‘정원 역전(逆轉)’은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학생을 못 채우는 경영 부실 대학의 퇴출은 불가피하다. 스스로 문을 닫는 대학의 설립자에게 잔여 재산의 일부를 돌려주거나, 공익·사회복지법인에 출연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퇴출 경로를 마련해야 대학 구조조정을 활성화할 수 있다. 그런 내용을 담은 이 법안들이 조속히 통과돼야 하는 이유다.

 교원평가 법제화를 위한 ‘초중등교육법’과 학원비 공개, 영수증 발급 의무화를 담은 ‘학원법’도 논의를 더 미뤄선 안 된다. 다음달 9일까지는 물리적으로 법안 심사가 가능하다. 그때까지 여야가 접점을 찾지 못하면 이번 정기국회에서 법안 통과는 어렵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일은 해야 되는 게 아닌가. 또다시 해를 넘기지 말고 교육 현안 법안들을 처리하길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