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세상] 박 어사가 환생해 토착비리 쓸었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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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하순 어느 쾌청한 날. 아름다운 자연을 음미하며 천안 은석산에 올랐다. 은석산 초입부터 놀라운 단풍의 경관이 펼쳐졌다. 누군가 단풍길을 인간 세상에서 하늘로 가는 길로 비유했었지. 그 말이 결코 과장되거나 근거 없는 표현이 아니란 걸 느끼며 한 발짝 한 발짝 옮겼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찬송가 가사가 생각나 작은 소리로 찬송하니 더 실감이 났다. 가을이라 새소리는 들리고, 시냇물 소리는 정말 깨끗하고 청명했다. 낙엽 밟는 소리는 정겹고, 살랑 살랑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했다.

 은석산(銀石山). 천안시 북면의 높이 455m 산이다. 독립기념관을 지나 병천 방향으로 가다 은지리에서 좌회전하여 마을 끝까지 가면 암행어사 박문수의 종중 재실이 있는 동네가 나온다. 재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우측으로 조금 더 가서 팻말이 안내해 주는 대로 천천히 30분정도 오르면 은석사다. 창건 당시 큰 사찰이었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여러 번 개수하면서 옛날의 모습은 사라지고 작은 사찰로 남게 되었다.

 박문수 어사 묘 안내판을 따라 나무로 된 계단을 따라 올랐다. 10분도 되지 않아 박문수 어사가 잠들어 있는 앞이 탁 트인 명당자리가 나왔다. 봉분 좌우로 칼을 찬 두 명의 무사상(像)이 지키고 있는데 곳곳에 이끼가 끼어 300년이란 세월을 말해주듯 고풍스럽다. 박문수. 본관은 고령이고 자 성보(成甫), 호 기은(耆隱),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1729년 문과 급제해 66세로 죽을 때까지 많은 일화가 남겼으며 특히 암행어사로 유명했다.

 박 어사가 환생해 전국 각 지역을 돌며, 민심을 살피고 토착 비리를 척결해 주면 어떨까. 잠시 생각해 본다. 나와도 인연이 있는 동향인 D군 군수와 내년 엑스포가 열리는 Y시 시장 등 현직 시장·군수가 본분을 저버리고 뇌물을 먹고 도망 다니다가 붙잡혀 쇠고랑을 찼다. 한심하고 부패한 공직자들이 어디 이들 뿐이랴.

 정상에 오르니 탁 트인 사방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가을걷이를 끝낸 논이 바둑판처럼 반듯하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것과 산 밑에서 바라보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 본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본 것이 전부인양 고집부리는 사람들이 가엽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코끼리 다리 만지기에 그치지 않고 코끼리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능력과 혜안을 갖기를 기원했다.

안창옥(천안장로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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