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HEU 핵’ 앞세워 6자 재개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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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북한이 영변에 발전용량 25~30㎿(메가와트)의 실험용 경수로를 건설하고 있다고 최근 방북한 미국의 핵 전문가에게 밝힌 것은 북한 핵 문제의 또 다른 변수다. 미국 연구기관의 영변 위성사진 판독 결과 아직 굴착 공사 단계에 불과하고, 북한의 경수로 건설 기술도 입증되지 않았지만 경수로에 대한 집착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북한이 보유한 영변의 5㎿ 원자로는 소련에서 도입한 흑연감속로에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위한 것이다. 반면 경수로는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상업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플루토늄을 추출하기가 어려운 원전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김일성은 생전에 경수로를 에너지 문제 해결의 열쇠로 삼았고, 실제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엔 한국형 경수로 2기 제공이 포함됐다.

 문제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없는 상태에서 이 실험용 경수로가 완공되면 북한이 플루토늄 추출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경수로 연료 제조를 위해선 우라늄 농축 기술이 불가결하다는 점이다. 북한이 다른 핵무기 원료인 고농축 우라늄(HEU) 계획을 갖고 있는 만큼 현재의 플루토늄 핵무기 외에 HEU 핵무기 제조도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북한의 비핵화 과정과 검증 작업은 훨씬 복잡해질 수 있다. 북한의 이번 움직임은 경수로 건설과 우라늄 농축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면서 6자회담 개최를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통일연구원 전성훈 박사는 “규모가 작은 실험용 경수로라는 것이 조금 의미가 불분명한 측면이 있지만 북한의 경수로 건설 천명이 현실화하는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며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내세워 주목을 끌고 협상을 촉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에 대해 14일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며 “그러나 만일 북한이 이런 방식으로 우리 관심을 유도하려 한다면 바람직한 움직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한때 경수로는 (핵) 확산 가능성이 작은 발전방식으로 여겨졌지만 근래에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특히 경수로 연료는 우라늄 농축 문제와도 관련돼 있다”고 우려했다.

정용수·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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