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빼려 복싱했는데 살 찌워야 할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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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체중 제한이 있는 종목 선수들에게 체중 감량은 매우 괴로운 일이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복싱 대표 선수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나동길 복싱 대표팀 감독은 11일, 훈련 뒤 체중이 적힌 쪽지를 보며 선수들에게 감량 목표에 대한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체중을 늘리기 위해 애쓰는 선수도 있다. 여자복싱 75㎏급에 출전하는 성수연(18·여주여고·사진)이다.

 성수연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집 근처에 있는 권투체육관을 다니기 시작했다. 복싱이 다이어트에 좋다는 얘기에 솔깃해서였다. 힘든 운동이지만 할수록 재미를 느꼈다. 그러다 체육관 관장이 “너는 신체 조건(1m75㎝·69㎏)이 좋으니 선수를 해 봐라. 아시안게임에 여자복싱이 있다”는 얘기를 해줬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선수의 길에 접어든 성수연은 곧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성수연은 “체육관에서 훈련할 때는 재미있었는데 선수촌 합숙훈련은 너무 다르다. 하루 종일 운동한다”며 괴로움을 털어놨다.

 성수연의 현재 체중은 71㎏으로 같은 체급의 선수들보다 4㎏ 정도 덜 나간다. 파워에서 열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 성수연은 “체중을 줄이려고 복싱을 시작했는데 대표선수가 돼서 더 불리게 됐어요. 한 달 동안 밥도 먹지 않고 굶어서 줄인 체중인데…”라고 울상을 지었다. 대부분의 선수가 감량으로 고생할 때 혼자 반대의 고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성수연은 “살을 찌우려고 노력하는데 운동량이 많아서 그런지 잘 안 된다”며 수줍게 웃었다.

 복싱 대표팀에는 박진아와 장은아(이상 22·용인대)까지 3명의 여자 선수가 있다. 이들은 한국 최초의 여자복싱 국가대표란 타이틀을 갖고 있다. 한국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여자복싱에 선수를 출전시켰다. ‘여자가 왜 험한 운동을 하느냐’는 주위의 눈총을 이겨낸 세 선수는 ‘국가대표 1기’라는 자부심으로 힘든 훈련도 버텨낸다.

 책임도 무겁다. 이번 대회 성적에 따라 여자복싱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9월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8강까지 올라 메달 후보로 꼽히는 장은아는 “1기인 우리가 잘해야 후배들에게 길이 열린다.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나동길 감독은 “우리나라 여자선수들은 집중력과 근성이 있다. 조만간 여자복싱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라며 성장 가능성을 높게 봤다.

광저우=김효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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