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노대통령 저격패러디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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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등 유력정치인들의 인터넷 게시판 댓글달기라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26일 '독립신문'의 대통령 암살 패러디와 관련한 의견을 직접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 관심을 끌고 있다.

김 장관은 26일 밤 10시16분 자신의 홈페이지(http://www.gt21.or.kr) 자유게시판에 '역사의 물길을 거스를 수는 없다-독립신문 패러디 사건을 보고'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리고 10분 뒤에는 인터넷 정치웹진 '서프라이즈' 토론방에도 이 글을 올렸다.

글의 주제는 독립신문의 '노무현 대통령 저격 패러디'와 관련된 것으로 '독립신문을 처벌함으로써 공연히 정치범을 만들어낼 이유가 없다'는 일부 네티즌들의 주장에 대한 반론의 성격이다.

김 장관은 글에서 "저격수의 노림과 노무현 대통령의 미간 가운데 조준된 과녁 그리고 '한번만 더 민족의 원수 김정일 두둔했다간 니 머리에 총알을 박아버리겠다'는 섬뜩한 문구를 보고 나는 전율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건 단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의 발로로만 해석할 수 없다. 우리 국민이 땀과 눈물로 이뤄낸 민주주의에 대한 폭력적 전복을 선동하는 것이다. 관념적인 안이함이나 부주의 또는 잰체하는 분위기로 대처해서는 곤란하다.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장관의 홈페이지와 서프라이즈 게시판에는 '정말 김 장관이 직접 글을 올린 것인가'라며 놀라워하는 네티즌들의 댓글이 많았다. '현직 장관이 네티즌들과의 직접소통의 장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반응도 있었다.

다음은 김장관의 글 전문이다.

제목: '역사의 물길을 거스를 수는 없다-독립신문 패러디 사건을 보고'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역사를 물길을 거스를 수는 없다"

"나는 당신의 주장에 반대한다. 그러나 당신의 표현의 자유는 언제나 옹호하고자 한다."

나도 볼테르의 저 유명한 주장을 좋아한다. 이번에도 그 주장을 옹호하겠다.

우리 네티즌들이 그 정도는 정리해낼 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연히 정치범을 만들어내 우리 민주체제에 부담이 되게 할 이유가 없다'는 어떤 인터넷 논객의 주장도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러나 그전에 몇 가지 따져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볼테르의 멋진 웅변으로 두루뭉수리로 넘어 가는 것은 너무 안이하다. 이유는 이렇다.

첫째, 이번 패러디에는 지독한 오해가 깔려있다. 상대방의 주장과 의견에 대한 주의 깊은 경청은 없다. 오히려 경청을 방해하는 선입관과 편견의 뿌리가 깊어 보인다.

둘째, 격렬한 증오와 적개심을 선동하고 있다. 자신과 다른 견해와 주장을 가진 사람을 폭력적 타도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건 민주주의 원칙을 배반하는 것이고 바로 파시즘의 뿌리다. 그래서 이 패러디를 단호하게 비판하고 반대할 수밖에 없다.

셋째, 네티즌과 국민의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자칭 '독립신문'(서재필 박사의 독립신문이 아니다)은 대통령을 겨냥하는 저격수 패러디를 내리고 대신 대통령과 총리를 함께 넣은 '총 대신 낫으로?'라는 만평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이번 사건은 편집자의 부주의나 우연한 실수 때문에 생긴 일이 결코 아니다.

'독립신문'은 '언론은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와 더불어 반드시 책임도 함께 짊어져야 한다'는 국민과 언론 사이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독립신문'은 이에 대해 국민을 향해 해명하고 설명해야 한다. 그것도 신속하게.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은 대통령으로서 얻은 광범한 정보를 바탕으로 내린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한반도와 그 주변의 동북아 사정을 봐도 북한이 지금 무너지면 우리 모두에게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통일된 독일의 경우 경제는 물론 사회적으로 아직까지도 너무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그래서 북한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대통령께서 발언한 것이라고 봐야한다.

저격수의 노림과 노무현 대통령의 미간 가운데 조준된 과녁 그리고 "한번만 더 민족의 원수 김정일 두둔했다간 니 머리에 총알을 박아버리겠다"는 섬뜩한 문구를 보고 나는 전율했다.

이건 단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의 발로로만 해석할 수 없다. 우리 국민이 땀과 눈물로 이뤄낸 민주주의에 대한 폭력적 전복을 선동하는 것이다. 관념적인 안이함이나 부주의 또는 잰체하는 분위기로 대처해서는 곤란하다.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해방정국의 아수라장이 떠오른다. 김구 선생, 여운형 선생 그리고 송진우 선생, 장덕수 선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네 분 모두 독립 운동가였고, 우리 지도자였다. 다만 일본 식민지로부터 해방되고, 남북한에 미군과 소련군이 점령군으로 진주한 조건에서 어떻게 우리 조국을 독립적 국가로 효과적으로 건설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견해차이가 있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토론과정을 통해 합의에 이르기는 당시 상황으로 봐서 쉽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그 길 외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그런데 해방공간에서 놀랍게도 테러리스트들이 속속 등장해서 지도자들을 암살해 버렸다. 국민을 불신과 좌절로 몰아넣었다. 돌이킬 수 없는 분열을 발생시켰다. 어떤 연유인지 모든 사건이 하나같이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았다. 범인들에 대한 책임추궁 또한 철저히 이뤄지지 않았다. 이완용에 버금가게 우리 국민이 아직도 미워하는 안두희의 경우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거기서 생을 마쳤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서영훈 선생님께 들은 말씀이 생각난다.

총을 겨눈 채 암살범이 물었다. 송진우 선생에게.

"당신은 왜 신탁통치를 찬성하십니까?"

"신탁통치에 참여해서 우리가 주도권을 잡아야 하고 잡을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속 그 주장을 펼 것입니까?"

"그렇다."

그러자 암살범이 '탕탕' 총탄을 퍼부어 살해해 버렸다는 것이다. 서영훈 선생에 따르면 '이런 방안을 낸 지략가가 바로 장덕수 선생이어서 역시 암살된 것'이라고 한다.

신탁통치 문제는 현대사의 큰 산봉우리이고 또한 심연이다. 김구 선생은 반대했고, 송진우 선생은 찬성을 했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모든 주장이 국민 가운데서 제시되고 토론될 수 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 때의 어떤 주장들도 볼테르의 말처럼 '표현의 자유'로 옹호되면서 말이다.

우리는 이미 해방 당시의 한국이 아니다. 경제발전도 상당하고 국민의 투쟁에 의해 이룩한 민주주의도 시민혁명 수준이다. 그러나 김구 선생님 말씀대로 해방공간의 상황을 잘 극복하지 못해 한반도의 전쟁과 불행을 막지 못했다. 이런 역사의 비극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다시 해방정국의 그 아수라장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제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에 '일정한 합의'가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회적 합의를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 정말로 다시 단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역사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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