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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는 ‘리더’가 있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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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2006~2008년 매 8월마다 기준금리를 올렸다. 뜨거운 여름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시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통화정책을 실패로 평가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2006년 8월은 경기가 꺾인다는 신호가 슬슬 나올 때였다.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3% 상승에 그쳤다. 그런데도 금통위는 ‘고유가 등으로 물가 오름세가 확대될 전망’이라는 이유를 들어 금리를 올렸다. 당시 시장에서는 커지는 부동산 버블을 가라앉히기 위해 금통위가 칼을 뺀 것으로 보았다. 이유야 어쨌든 이후 경기는 하강곡선을 그려 금통위의 결정이 성급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1년 뒤 2007년 8월에 금통위는 다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가을 들어 베어스턴스를 비롯한 미국의 주요 금융사들이 불량 모기지 투자로 손실을 입어 세계금융시장이 1차로 흔들렸기 때문이다. 2008년 8월에도 그랬다. 금리인상 직후인 9월에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금통위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이런 금통위를 두고 “못 믿겠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비판자들도 금통위의 결정에는 목소리를 높였지만 “도대체 금통위가 어디 있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물가안정이라는 목표에 맞춰 한은은 시장에 계속 긴축 신호를 보냈고, 말대로 실천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금통위의 정책방향이 틀렸더라도 시장은 미우나 고우나 금통위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은행이 시장을 이끄는 리더로 불리는 이유다.

 이 리더, 요즘 시장에서 희미하다. 김중수 총재가 이끄는 금통위에 대한 시장의 눈길이 달라져서다. 7월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예상을 뛰어넘더니 이후 3개월간 추가로 올린다는 신호를 주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면 그대로다. 중앙은행의 신호를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이 망연자실하는 이유다. 반응은 그래서 거칠다. ‘한은의 신호보다는 청와대나 정부 입장에 주목하라’(삼성증권), ‘금통위나 총재의 발언에 집중할 필요는 없다’(키움증권), ‘5분 대기조 자세로 통화정책에 대비해야’(현대증권).

 리더의 권위가 사라진 시장은 혼란에 빠진다. 지금 물가와 원화 값이 같이 뛰고 있다. 미국의 양적 완화 정책으로 달러가 국내에 더 쏟아져 원화 가치는 더 오를 전망이다. 이 상황에서 금통위가 물가를 잡자고 금리를 올릴지, 아니면 수출이 걱정돼 그대로 둘지 시장은 도무지 감을 못 잡는다.

 이럴 땐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최적의 통화정책은 주도면밀한 경제분석과 ‘물가안정’을 위한 합리적 판단을 통해 결정돼야 한다. 정치적 좌고우면(左顧右眄)은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은이 시장의 맞상대(카운터파트)로 우뚝 설 수 있다. 이게 한은이 외부의 압력에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16일 열릴 금통위 정례회의에 관심이 쏠린다.

김종윤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