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딱 걸렸어!" 특권층 과속 봐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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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해 프랑스에서 약 7000대의 자동차가 과속 벌금을 편법으로 면제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과속단속 카메라에 잡힌 이들 차량 중에는 프랑스 대통령궁 차량과 총리공관 차량도 포함돼 있다. 경찰 차량이 3660대로 가장 많았다. 그 밖에 헌병 차량(189대).군 차량(123대).세관 차량(76대) 등 다양했다.

대부분 힘깨나 쓴다고 알려진 기관의 차량들이었다. 외교관 차량(2590대)도 둘째로 많았다. 중국 외교관(155회)들이 가장 많았다. 중국대사 차량도 한 차례 과속으로 카메라에 적발됐다. 미국 외교관 차량은 12번으로 매우 적었다. 최고 위반 속도는 국립경찰 소속 차량이 파리 서부 이벨린 지역 고속도로에서 기록한 212㎞였다.

이런 사실이 16일 프랑스의 폭로.풍자 전문 주간지 르 카나르 앙셰네에 보도되자 프랑스 사람들이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권층의 권력 남용'이라는 것이다. 파리의 한 시민은 "법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어기고, 권력을 이용해 처벌을 피하면 되느냐"고 비난했다.

정부가 즉각 진화에 나섰다. 로제 파랑 경찰청장은 "앞으로는 위반사실을 해당 행정기관의 장에게 통보할 것"이라며 "경찰이든 헌병이든 위반 차량이 벌금을 면제받기 위해선 긴급상황이었음을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무부 관계자는 "과속 사실을 합리적으로 해명하지 못하면 징계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외무부는 위반한 외교관 차량에 대해서도 특별 관리할 방침이다. 지금까지는 외교관 차량이 위반해도 편지로 해명하면 대부분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이 관례였다. 외교관들의 특별한 지위 때문에 강제집행할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주프랑스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최근 들어 외교관에 대해서도 법 집행이 엄격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에선 톨레랑스(관용)를 자랑으로 여긴다. 그러나 관용이 잘못 해석돼 특권이 남용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예외가 많으면 법칙이 제대로 서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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