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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부담금은 국민건강 종자돈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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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부는 오는 7월 담뱃값을 500원 추가 인상해 2조1000억원에 이르는 담배부담금, 즉 국민건강증진기금을 매년 확보하게 된다. 이 재원으로 건강보험재정의 일부를 보충하고 나머지로는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각종 사업을 전개한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에 대해 시중의 반대 여론은 다양하다.

지난 14일자에 실린 김성수 교수의 글은 담배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김 교수는 이 기금이 현재 건강보험재정의 적자를 메우거나 공공보건 인프라의 확충 등에 쓰이므로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담배는 '비가치재(非價値財.merit bads)'다. 정상적인 '가치재(merit goods)'와는 달리 일반 소비자들이 소비에 탐닉하지만 그것이 주는 폐해가 지대하므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과정에 정부가 개입, 소비를 억제하거나 금지해야 하는 재화다. 담배는 이미 임상의학적으로 그 독성과 치명적 피해가 잘 알려져 있다. 담배가 유발하는 질병의 종류가 200여 개나 되며 연간 흡연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만도 약 1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담배 소비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도저히 채택키 어렵다. 이때 쓸 수 있는 수단이 가격정책이다. 담배에 인위적으로 높은 세금을 매겨 소비를 억제하게 된다.

문제는 어떤 형태로 거두어, 어떤 용도로 쓰느냐다. 우선 김 교수의 첫째 대안처럼 일반회계로 편입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미 담배에는 소비세 131원과 부가세 41원이 포함돼 있지만, 추가로 거두어진 돈이 국방이나 도로건설에도 쓰인다면 담뱃값이 국방부나 건설교통부의 뒷돈이 되는 꼴이 아닌가?

그렇다고 김 교수의 둘째 대안처럼 국민건강보험의 재정과 일원화해 기금으로 묶는 것은 더더욱 문제가 있다. 건강보험의 보험료 수입과 담배부담금 수입이 하나의 주머니로 된다는 것은 건강보험제도의 원리를 크게 저해해 현행 보험료 산정 방식과 수가 결정 방식에 엄청난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잘못하면 국민 모두의 병.의원 이용료를 흡연자들이 지원해 주는 아이러니도 발생한다.

원리적으로 볼 때 건강보험료는 그해 걷은 것이 그해 모두 지출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의료 서비스의 가격이 정해졌을 때 보장성의 수준에 따라 보험료 부담이 기계적으로 산출되는 구조이므로 굳이 기금화해야 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건강보험재정을 기금화했을 때 전체 예산의 통제관리 시스템에 묶여 현재 56%라는 낮은 보장성 수준에 묶인 우리의 건강보험 제도가 그대로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담배부담금과 건강보험재정을 합칠 이유도, 덩달아 건강보험재정을 기금화할 이유도 없는 것 아니겠는가? 현재로서 담배부담금은 국민건강 증진의 종자돈임에 틀림없다.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