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섬세한 눈, 단단한 지성으로 쓴 미국 문화 답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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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시간의 노상에서 1·2
신문수 지음, 솔
344·357쪽
각 권 2만5000원

미국의 역사를 씨줄로, 문화예술을 날줄로 삼아 엮은, 무늬 고운 에세이다. 지은이는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 16세기 영국인들이 식민지 건설을 위해 첫발을 디뎠던 노스캐롤라이나의 로오노크 섬에서, 오늘날 흑인들의 정신적 대부로 꼽히는 프레데릭 더글라스의 기념관이 있는 워싱턴의 시다 힐까지 역사의 이정표를 따라갔다.

 여행기답게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사실적 묘사가 눈길을 끈다. “콩그레스 가를 따라 곧장 걸으니 이윽고 패늘 홀이다. 거리에 면한 입구 쪽에 서 있는 사무엘 애덤스의 동상이 눈길을 끈다…1880년 앤 휘트니가 조각한 것이다…동상의 한 쪽 명판에는 ‘부패와 두려움을 몰랐던 정치가’라고 새겨있다. 오늘날 이런 정치가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1권 ‘독립혁명의 발원지 매사추세츠의 콩코드, 렉싱턴, 보스턴’)

 그러면서도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서는 섬세함과 깊이가 있다. 1825년부터 1875년까지 뉴욕 허드슨 강 연안의 자연풍경을 즐겨 그린 일군의 화가들을 일컫는 ‘허드슨강파’를 설명하는 대목이 그렇다. 이들의 풍경화 대부분이 전경(前景)에 부러진 고목 등 숭고미를, 후경(後景)에 넓고 잘 다듬어진 초원 등 ‘아름다움’을 넣은 이중적 구도라는 분석을 하면서 “미국이 세계무대에 자신의 고유한 문화적 자산으로 내세운 최초의 의미 있는 회화양식”이라 평가한다. 여기에 중심인물인 토마스 코울과 그의 제자 프레더릭 처치가 대표작 전시회에서 막대한 관람료 수입을 올렸다는 에피소드를 곁들여 흥미를 돋운다.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우리 눈’으로 본 미국문화 답사기라는 점이다. 미국 문화의 건강성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비틀린 역사를 꼬집는 데 인색하지 않다. 하와이 왕국 전복 100주년이던 1993년 클린턴 대통령 등이 사과 성명을 발표한 사실을 밝히면서 “정치적 실천을 수반하지 않는 윤리적 반성은 기실 미국사를 돌이켜보면 수없이 반복되어온 제스처이다. 이런 모순을 모순으로 느끼지 않는 것이 미국의 미국다움인지도 모른다”고 지적하는 식이다.

 무조건적 미화나 무분별한 폄하를 피해간 점이 조금은 아쉬운 글맛을 벌충하고도 남는 책이다.

김성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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