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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 동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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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에게 기자가 물었다. “금요일에 결혼한 사람은 평생 불행하다는 말을 믿습니까?” 독설가였던 쇼가 즉각 대답했다. “물론이지요. 금요일이라고 예외일 수야 있겠습니까?” 그냥 우스갯소리로 넘기기 어려운, 뼈가 있는 일화다. 더욱이 요즘 젊은이라면 꽤 공감이 가는 얘기지 싶다. 통계청이 그제 발표한 ‘2010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남녀 모두 결혼에 대한 선호도가 줄고 있다. 미혼인 남자는 62.6%, 여자는 46.8%만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적잖은 젊은이들에게 결혼이 더 이상 인륜대사(人倫大事)가 아닌 세상이다.

 결혼 제도에 대한 의문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결혼을 과거의 관습으로 치부하는 서구의 젊은이들이 늘고, 타임지는 결혼 제도의 소멸을 예언한 바 있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도 결혼 제도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조짐이다.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20대의 혼전 동거에 대한 개방적인 의식변화가 대표적이다. 자그마치 59.3%가 결혼을 안 해도 동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단다. 결혼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혼전 동거는 북유럽 국가에선 흔하다. 헝가리의 경우 결혼율은 1970년 87.7%에서 2005년 71%로 떨어진 반면 동거율은 같은 기간 2.1%에서 12.2%로 올라갔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선 2003년과 2007년 사이 결혼한 커플은 3.5%가 감소한 반면 동거를 시작한 커플은 9%가 늘었다. 이런 흐름은 이제 동양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중국 장쑤(江蘇)성은 2003년 결혼 증명 없이도 남녀가 동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그러면서 덧붙인 이유가 그럴듯하다. “그간의 동거 금지 규정은 계획경제 시대의 유물로 지금의 시장경제에는 맞지 않으며, 동거는 사생활로 국가가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동거가 결혼보다 장밋빛은 아닌 모양이다. 영국 사회조사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동거 커플은 결혼한 부부보다 생활 형편과 건강상태가 좋지 않고, 정서도 불안정해 외도하는 정도가 더 심하다. 첫 동거의 평균 지속기간이 2년에 불과하고, 나중에 결혼으로 이어지는 60% 가운데 35%는 10년 안에 헤어진다고 한다.

 몽테뉴는 “좋은 결혼이 극히 적은 것은, 그것이 얼마나 귀중하고 위대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고 내칠 것만은 아니다. ‘잘된 결혼’은 날개를 다는 일일 텐데….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