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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원정, 이슬람 때리기? No!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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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거장이란 이름을 달고 사는 감독 중에서도 리들리 스콧(68.사진(右))은 특이하다. 소위 작가 감독과 흥행 감독으로 구분되는 영화판에서 그는 '에이리언''블레이드 러너''델마와 루이스''글래디에이터'등 영화사에 남을 걸작이면서도 동시에 흥행작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가 이름값을 확인시켜줄 새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을 내놓는다.

신작은 12세기 2, 3차 십자군 원정 사이의 10년간 짧은 휴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성지 예루살렘을 놓고 기사 발리안(올란도 블름)과 이슬람 전사 살라딘이 격돌하고, 또 기독교와 이슬람의 '성전'이라는 민감한 소재 때문에 촬영 중 이슬람권의 거센 반발에 부닥치기도 했다.

7일 도쿄 파크 하얏트 호텔에서 만난 스콧 감독은 "균형잡힌 시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간의 억측은 모두 오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이슬람을 폄하하지 않았는가" "현재의 국제정세에 빗대 영화를 찍지 않았는가" 등 잇따른 질문에도 단호하게 "노"라고 응답했다.

▶ "킹덤 오브 헤븐"의 십자군 전쟁 장면. 리들리 스콧 감독은 대부분의 군중 장면을 컴퓨터 그래픽 대신 실제 사람으로 표현했다.

"이 영화는 기독교와 이슬람 두 종교 간의 쉽지 않은 휴전기를 다루고 있다. 그것만 봐도 지금의 복잡한 국제정세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관객들이 단지 영화를 보고 즐기기를 바랄 뿐이다. 게다가 균형을 맞추기 위해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슬람권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참고했다. 영화를 완성하고 컬럼비아 대학의 저명한 이슬람 학자에게 보여줬더니 '지금까지 봤던 영화 중 최고'라고 칭찬했다."

SF극 '에이리언', 여성 버디무비 '델마와 루이스'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해온 그가 '글래디에이터'에 이어 다시 서사극에 도전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오늘날 관객에게 오래 전의 시대를 경험하게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서사극이 흥미롭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역사를 이렇게 정의했다. .

"역사는 지적인 사기다. 역사란 승자에 의해 기록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부정확한 게 아닌가. 하지만 사료를 많이 뒤지다 보면 한 사건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이 나온다. 이를 짜맞춰 보면 보다 진실에 가까워진다. 이번 영화는 그렇게 만들었다."

'킹덤 오브 헤븐'은 초대형 서사시다. 순제작비만 1억3000만 달러(1300억원)를 들였다. 가장 큰 특징은 할리우드의 전유물 비슷한 컴퓨터 그래픽(CG)을 최소화했다는 점. 대규모 전투 장면도 실제 인물.세트로 촬영해 현실감을 높였다. 실제로 7일 도쿄 로드쇼에서 공개된 30분 분량의 가편집본에 나타난 전투 장면 또한 그 어떤 영화보다 스케일이 장대했다.

감독은 "CG는 놀랍고 멋진 도구지만 단지 관객을 속이는 장치일 뿐이다. CG로 어떻게 하면 보다 사실처럼 보일까 고민하기보다 '진짜'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신작이 '글래디에이터'만큼 흥행할 수 있을까.

스콧은 "아무도 어떤 영화가 성공할지 예측할 수 없다. 영화는 끝날 때까지 승부를 알 수 없는 스포츠 같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떤 방식으로 관객과 소통하느냐는 점이다. 또 감독은 투자자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예술성과 상업성, 둘의 균형이 핵심이다. 신작이 성공한다면 그 균형을 잘 맞춘 덕분일 것이다"고 말했다. '킹덤 오브 헤븐'은 5월 5일 국내 개봉한다.

도쿄=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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