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르포] 국내 유일 청주여자교도소를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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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짜리 연노랑 청주여자교도소는 외관만으로는 마치 학교 건물같다. 하지만 5m의 높은 담과 3개의 철문을 사이에 두고 세상과 철저히 격리돼 있다. 형이 확정된 국내 여성 수용자 1815명 중 790여 명이 수감 중인 청주여자교도소 안을 1박2일간 들여다봤다.

"기상, 기상."

지난 4일 오전 6시 교도소 내 사동(수용자들이 사는 건물) 복도. 교도관들의 기상 소리로 아침이 시작됐다.

▶ 여성 수용자들은 저녁 식사가 끝난 뒤 거실(감방)에서 TV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독서 등을 하면서 하루를 정리한다. TV프로그램은 교도소의 사전 심의를 거친 녹화물로, 키스신은 허용되지만 5초 이상의 베드신은 금지된다.청주=김경빈 기자

▶ 수감 중인 두 명의 여성이 딸과 함께 교도소 운동장을 산책하고 있다. 유아는 생후 18개월이 되면 교도소를 떠나야 한다.

1.3.5.7인용 거실(감방)에 나눠 살고 있는 수용자들이 일제히 일어나 이불을 갠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공간은 1평 남짓. 그나마 최근 수용자가 늘어 정원이 한 명씩 초과된 방이 상당수다.

같은 작업을 하는 사람들끼리 한 방을 쓰는 게 원칙.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는 1인실은 환자나 성격상 문제가 있는 사람 등에게 우선 배정된다.

6시30분. "하나, 둘, 셋, 넷, 번호 끝. 이상없습니다."

기상 점검에 따라 수용자들은 방 안에 줄을 맞춰 앉아 있다가 번호를 외친다. 인원 점검은 이동이 있을 때마다 반복된다. 방 안에서 '일식삼찬(一食三饌)'의 아침 식사를 하고 나면 오전 8시. '출역(방에서 나와 작업장 등으로 나가는 것)'시간이다.

수용자들도 작업장으로 나가기 전 화장을 한다. 스킨.로션 등 기초 화장품만 허용되지만 일부는 영양제의 붉은 캡슐을 녹여 립스틱 대용으로 바르기도 한다.

노인.환자 등 작업을 하지 않는 280여명을 제외한 510여명은 매일 교도소 내에서 오전 8시에 출근, 오후 5시에 퇴근을 한다. 같은 교도소 안에서 4.5층은 작업장, 2.3층은 거실이다.

오전 11시 바지를 만드는 5공장 안. 37명의 수용자들이 재봉일에 한창이다. 분주한 분위기가 일반 공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작업장마다 교도관 한두 명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한다.

외부에서 주문받은 물건을 생산하는 도자기 공장.의류 공장은 한 달에 10만~20만원의 상여금을 받을 수 있어 인기가 높다. 한 반이 20명 안밖인 직업 훈련반은 제과제빵.한식조리.기계자수 등 7개 과정이 있다.

점심 시간이 지나자 운동장이 붐비기 시작한다. 운동 시간은 하루에 30분. 언제나 줄을 맞춰 움직이는 수용자들도 이 때는 자유롭다. 하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도 이때다. 한 수용자는 "밤에 하늘을 본 적이 없다. 별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작업이 끝나는 오후 5시. 봉제 공장에서 교도관들이 가위 개수를 일일히 세고 있다. 보안과 관계자는 "여러 명이 일시에 움직이기 때문에 작업이 끝나고 수용자들이 모두 거실로 들어가 문을 닫을 때(폐방)까지의 20~30분이 가장 긴장된다"고 말했다. 몸 수색은 방에 돌아가기 전 꼭 거쳐야 하는 과정.

여자 교도관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더듬는다. 손가방도 샅샅이 뒤진다. 이 때문에 교도관도 148명 중 여자가 105명으로 70%다. 다른 교도소들은 여자 교도관이 3% 이내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취침 점호 전까지는 자유시간. 이때 TV드라마 시청이 수용자들에게 낙이다. '봄날''토지' 등이 나올 땐 숨소리도 안 들릴 정도로 조용해진다. 방영되는 프로그램은 사전 심의를 거친 녹화물들. 키스신은 괜찮지만 5초 이상의 베드신은 삭제된다.

오후 8시 30분에는 취침 점호. 하지만 점호가 끝나도 교도소의 불은 밤새 꺼지지 않는다. 만약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좁은 방에 여럿이 모여 있는 밤엔 싸움이 일어나기 쉽다. 경력 15년의 노순현 교위는 "사소한 말 한마디가 발단이 된 싸움이 하루에 한두 건씩 일어난다"고 말했다. 노 교위는 "요새는 교도관들이 취침 시간에 '잠을 자라'고 하면, 수용자들이 '자기 싫은데 왜 자야 하느냐'고 대드는 식"이라면서 "교도관들이 오히려 수용자들의 눈치를 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환경이 좋아졌다고 해도 교도소 생활이 편할 리 없다.

남편 살해 혐의로 8년째 복역 중인 무기수 A(34)씨는 잠자는 시간이 가장 기다려진다고 했다. "운동.드라마도 좋지만 잘 때는 괴로운 생각 다 잊어버리잖아요."

청주=김현경 기자<goodjob@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 청주 여자교도소는

18개월 아기까지는 육아 가능…노래방 갖추고 비만 클리닉도

"주임님, 우리 애가 자꾸 보채네요. 나가고 싶은 가봐요."

"이리 줘봐요. 내가 달래볼게요."

지난 5일 오후 6시30분. 교도관 박모(여.7급)씨는 거실(감방) 문을 열고 엄마인 수용자 A씨(29)에게서 아기를 받아들고는 복도를 서성인다. "착한 애기가 오늘 왜 그래? 까꿍~" 다른 거실의 수용자들도 아기에게 손짓한다. A씨가 수용된 5평 남짓한 방에는 현재 15개월.16개월짜리 딸을 키우는 20대 엄마 두 명과 60대 여성 한 명이 살고 있다.

수감된 임신부는 출산 때가 되면 민간 병원에 입원해 아기를 낳은 뒤 돌아온다. 분유.기저귀.장난감 등은 교도소에서 지급한다. 그러나 아기는 생후 18개월까지만 엄마와 함께 지낼 수 있다. 올해 말 석방 예정인 A씨의 경우 3개월 뒤면 아기와 헤어져야 한다. A씨는 "밖에 아기를 돌봐줄 사람이 있느냐" 질문에 "보육원에 보내야죠…"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지난 1월엔 러닝머신 등 각종 기구를 갖춘 헬스장도 생겼다. 10여 평 규모의 헬스장은 법무부와 문화관광부가 2억여원을 지원해 문을 연 '다솜문화의 집'시설 중 하나다. 운동시간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수용자들은 복역 기간에 체중이 많이 는다. 간식을 많이 먹기 때문이다. 교도소 측은 지난해 특별 활동의 하나로 자원봉사하는 외부 강사를 초청해 '비만 클리닉'을 운영하기도 했다. 교도소 관계자는 "살을 빼야 한다면서 쌀 80%, 보리 20%인 교도소 밥을 보리 100%로 줄 수 없겠느냐고 요구하는 수용자도 있다"고 말했다.

마치 작은 갤러리처럼 은은한 조명이 비치는 복도에 그림들이 걸려있는 문화의 집에는 노래방.다도실.도서실 등도 있다. 노래방은 보통 서너 달에 한 번씩 이용 가능하다.

충북 청주시 산남동에 위치한 청주여자교도소는 1989년 10월 설립됐다. 국내 유일의 여자 교도소로 지하 1층, 지상 5층짜리 'ㅁ'자 모양의 현대식 건물에 문화의 집.노래방.헬스장.공연장 등 부대 시설이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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