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이세돌의 결정타, 흑15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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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4강전
[제13보 (145~155)]
黑 .이세돌 9단 白.왕시 5단

흑▲가 상변 백 대마를 노린다면 백△는 좌상 흑 대마를 노린다. 쌍방의 노림이 성공해 바꿔치기가 이뤄진다면 바둑은 백 승이다. 유리한 흑의 입장에선 갈등이 일어나는 상황이다. 편하게 하나 지켜두고서 약간의 우세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수를 추적해 결판을 낼 것인가. 그러나 수라는 것은 내가 아무리 완벽하게 읽었다 할지라도 불의의 묘수를 당할 수 있다. 이창호 9단이 항시 조심스러워하는 바로 그 대목이다.

그러나 이세돌 9단은 어둠 속의 표범처럼 눈을 빛내며 앞으로 나아간다. 머뭇거리지 않으며 크게 고심하지도 않는다. 영리하게 상황을 파악한 뒤 이 길이다 싶으면 아무리 위험이 따른다 해도 결행한다. 이세돌은 일단 145로 찔러 149까지 한점을 잡았다. 한집을 확보한 것이다. 왕시(王檄) 5단이 150으로 절단하자 -사실은 바로 여기가 진짜 기로인데- 151로 가만히 빠져 상변 백대마를 잡아버렸다.

151은 두 가지 극적인 요소를 안고 있었다. 그 하나는 이 수가 최강의 수라는 점이고 두 번째는 기막힌 묘수라는 점이었다.

만약 이 수로 '참고도' 흑 1로 젖혀 잡으러 갔다면 이 바둑은 흑이 졌을지 모른다. 백 2로 잡으러 올 때 흑 대마가 사는 수도 의문이거니와 나중에 A로 반발하면 이곳도 패가 나기 때문이다. 151은 B와 C를 맞보기로 하여 상변의 명맥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더구나 이 수는 흑 대마의 사활에도 결정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이세돌의 예기와 강렬함, 그리고 영악함과 날카로움을 모두 함축한 이 151의 한 수로 바둑은 단번에 종착역에 다다랐다.

왕시는 물론 152로 두어 대마의 눈을 없앴다. 그러나 이세돌이 155로 잇자 그의 얼굴은 금세 어두워지고 만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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