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유시민, 광주서 야권 대선 레이스 전초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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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호 10면

야권이 꿈틀거리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라는 확실한 대선후보가 있는 여권과 달리 지지도 10% 미만의 고만고만한 후보군 속에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던 야권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0·3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손학규(63·사진 왼쪽) 대표가 당선된 게 기폭제가 됐다. 손 대표는 이후 컨벤션 효과를 업고 마(魔)의 10% 선을 돌파했다. 오랫동안 야권 선두를 달리던 유시민(51·오른쪽)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을 단숨에 역전한 것이다. 야권이 ‘복수’ 경쟁체제로 들어서자 대중의 관심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27일 광주 서구청장 재선거에 관심 쏠리는 까닭

그런 가운데 27일 광주에서는 서구청장 재선거가 열린다. 민주당을 제외한 야4당과 시민단체 단일후보로 국민참여당 후보가 올라와 민주당 후보와 한판승부를 벌이게 됐다. 정치권의 관심은 자연 손 대표와 유 원장의 대결에 쏠리고 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 대선후보 경쟁의 전초전이 펼쳐지는 셈이다.

민주당 vs 야4당+시민단체
광주 서구청장 재선거는 각축전 양상이다. 민주당 프리미엄을 앞세운 김선옥 후보와 청와대 비서관 경력에 시민단체의 전폭 지원을 등에 업은 국민참여당 서대석 후보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여기에 전직 구청장 출신의 무소속 김종식 후보가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손 대표는 겉으론 이번 선거와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모습이다. 민주당 텃밭에서 이겨야 본전이란 생각에서다. 하지만 호남의 ‘전략적’ 선택으로 당 대표에 선출됐는데 한 달도 채 안 돼 패하면 정치적 타격이 작지 않다.

반면 안정적 표차로 이기면 손 대표의 입지가 확고해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더구나 국민참여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 등 야4당과 시민단체 단일후보를 눌렀다는 점에서 향후 야권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16~17일 1박2일간 광주에 머물며 “2012년 정권교체를 위해 민주당에 새로운 힘을 불어 넣어달라”고 대선까지 언급한 이면에는 이런 판단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손 대표는 24일에도 광주를 찾는다.

이에 맞서 유 원장도 틈나는 대로 광주로 내려가 선거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17일 거리유세에서는 “경남이 김두관 지사를 뽑아줬으니 이제 호남이 화답할 때”라며 “광주시민들이 맏아들(민주당)이 아닌 다른 아들들에게도 사랑을 줘야 한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참여당 관계자는 “야권의 혁신적 변화에 대한 주문이 높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도 현지를 방문해 연대를 과시할 예정이다.

유 원장과 야4당은 이번 선거에서 이기면 당연 대박이겠지만 의미 있는 선전만 해도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고 보고 있다. 야권연대의 속도를 내라는 주문으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손 대표를 일정 부분 견제하고 야권후보군을 풍성하게 하려는 또 다른 전략적 선택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7·28 재·보선 때 인근 광주 남구에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44%를 얻은 전례도 있다. 특히 당분간 호남 지역에서 이렇다 할 선거가 없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 결과가 한동안 광주민심의 바로미터로 여겨질 수 있다. 국회의원 선거는 없지만 10·27 초미니 재·보선에 야권의 관심이 집중되는 까닭이다.

호남의 두 번째 ‘전략적’ 선택은 누구?
손 대표는 가파른 지지도 상승이 큰 무기다. 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 리얼미터 조사의 경우 지난달 17일 손 대표는 7.1%로 13.9%를 얻은 유 원장에게 한참 뒤졌다. 하지만 한 달 뒤인 이달 15일엔 12.7%로 12.5%의 유 원장을 앞질렀다. 한길리서치 조사에서는 지난달 12일 7.3% 대 9.0%이던 지지도가 이달 17일엔 14.4% 대 6.5%로 뒤집혔다. 야권 주자들만을 상대로 한 대권 적임자 조사에서도 손 대표는 35.1%로 유 원장(17.5%)을 두 배 가까이 앞섰다.

명지대 김형준(정치학) 교수는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의 박근혜 전 대표 견제심리에 수도권과 중도 성향표가 가세하면서 손 대표의 지지도 상승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유 원장도 당분간 자체 경쟁력 확장을 위해 노력하며 손 대표와 긴장적 경쟁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도 “지금 추세라면 손 대표가 20%를 넘어설 여지가 충분하다”며 “유 원장의 전략적 대응이 관심거리”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유 원장은 21일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손 대표는 민주당의 대표라는 점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손 대표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은 야권 후보 전체의 지지도가 커지는 것으로 국가적으로도 매우 바람직하다”며 긍정적 반응을 보여 관심을 모았다.

손 대표와 유 원장은 유사점이 많다. 우선 1947년과 59년생으로 띠(돼지)동갑이다. 또 서울대 선후배 사이다. 손 대표는 서울대 정치학과, 유 원장은 경제학과를 나왔다. 유럽 유학파(손 대표는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학 박사, 유 원장은 독일 마인츠요하네스구텐베르크대 경제학 석사)라는 공통 분모도 갖고 있다. 경기도를 기반으로 정치를 해온 점도 겹친다. 손 대표는 경기도 광명시 국회의원에 이어 경기도지사를 지냈다. 유 원장은 경기 고양덕양갑에서 두 차례 국회의원을 지냈다. 향후 대선 레이스에서 제로섬 게임이 펼쳐질 여지가 충분한 셈이다. 최근 한 달 새 지지도의 상반된 부침이 이를 증명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각에선 둘 사이가 본격적인 긴장관계보다는 한동안 탐색전 양상을 띨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손 대표는 6·2 지방선거 때 경기도지사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나름의 중재역할을 하며 유 원장과 신뢰를 쌓았다. 이후 유 원장 측은 손 대표를 “합리적 대화가 가능한 정치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손 대표가 김영춘 전 의원을 민주당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한 것도 주목거리다. 김 최고위원은 17대 국회 때 “옳은 말도 싸가지 없게 한다”며 유 원장에게 독설을 퍼부었지만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 때 공개지지를 선언하며 관계를 회복했다. 손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당내에 만만찮은 지분을 갖고 있는 친노 진영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손 대표가 공개적으로 유 원장과 각을 세우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띠동갑에 둘다 경기도가 정치 기반
정가의 최대 관심사는 뭐니 해도 2012년 대선이다. 손 대표는 벌써 지지도 20%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론조사상으로 볼 때 유 원장은 그동안 부동의 야권 선두주자였다. 2012년 야권후보 단일화가 추진될 경우 ‘TOP 2’에 이름을 올릴 확률이 지금으로선 가장 높은 두 후보다. 정치권에서는 손 대표와 유 원장을 포함한 야권후보 단일화가 성사되면 진보와 중도를 모두 아우르는 후보가 등장하면서 여권과의 ‘진영’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물론 이런 가정이 실현되기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손 대표가 20%대에 안착할 수 있을지, 그럴 경우 그 지지도가 내년 연말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가 1차 관건이다. 정동영·정세균·이인영·천정배 최고위원 등 당내 경쟁자들과 잠재적 후보군으로 분류되고 있는 송영길 시장, 안희정·이광재 지사 등 486 도백들과의 경쟁에서도 승리해야 한다.

더욱이 손 대표는 이번 전대 출마로 단 한번 쓸 수 있었던 ‘호남의 전략적 선택’이란 선수(先手)를 이미 써버린 상태다. 호남민심의 속성상 이 같은 선택이 2012년 대선후보 경선 때도 반복되리란 보장이 없다. 오히려 호남 유권자들로서는 짐을 덜었다는 생각에 냉정하게 대선 후보를 고를 여유가 생길 수도 있다. 손 대표의 홀로서기 내공이 더욱 중요해진 까닭이다.

유 원장도 개인과 당 지지도가 일치하지 않는 딜레마를 극복해야 한다. 경기도지사 선거 때 드러난 확장성 부족이란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는 숙제도 안고 있다. 2012년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민주당과 먼저 합당 또는 후보 단일화를 할지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과 진보진영 단일화를 추진한 뒤 민주당 후보와 최종 경선을 치를지 ▶독자노선을 견지하며 민주당·진보진영 후보와 3자 대결을 벌일지 등 세 가지 방안을 놓고 고민도 깊다. 유 원장이 어떤 선택을 하든 손 대표와 한번은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 첫 시험대가 27일 광주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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