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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연구에도 박수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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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호 31면

최근 학계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하버드대의 진화심리학자 마크 하우저 박사의 논문조작 사건이 밝혀지면서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고 있다. 하우저 박사는 영장류 실험을 통해 인간의 기본적인 도덕성과 지적 능력이 어디에서 기원해 어떻게 진화돼 왔는지를 연구해왔다. 인간이 가진 도덕성의 뿌리를 찾던 그가 10년 넘게 자신의 연구에서 부정을 저질러왔다는 사실은 웃을 수조차 없는 아이러니다.

하우저 박사는 지난 수년 동안 한 달에 한 편꼴로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들을 바탕으로 연구해온 수많은 과학자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조작인지를 알기 위해 소동을 벌이고 있다. 이 분야 과학자들에게는 실로 재앙적인 사건이다. 에머리대의 영장류 행동심리학자인 프란스 데발 교수는 “이 분야는 정말 좁은 영역이기 때문에 거장 한 명의 부정행위로 우리 모두 의심을 받게 됐다”고 탄식했다. 진화심리학 분야 전체의 위기라는 것이다.

그렇다. 한 사람의 부정으로 많은 사람이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공든 탑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게 바로 학문이다. 학문의 한 분야는 한두 사람에 의해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의 땀과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 형성되기 때문이다.

하우저 박사뿐만 아니라 한·미·유럽을 막론하고 잊을 만하면 터지는 학계의 부정행위는 이제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빈도 수가 잦아지고 있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정직하지 못한 극소수 과학자들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도덕성 논란을 넘어 과학계의 구조적인 문제점도 하나 지적하고 싶다. 연구자들은 항상 많은 부분에서 크고 작은 부정을 저지르고픈 유혹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성공한 연구 중심의 평가’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공한 연구에만 갈채와 찬사를 보내는 풍토 때문에 과학자들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연구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어떤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할 때, 그 가설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정확한 판단을 내리려면 과학자들이 연구과정에서 항상 객관적 입장으로 작업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학계 평가는 가설이 옳다고 증명되었을 때에만 연구 성과를 인정해 준다.

수년에 걸쳐 힘들게 연구를 수행했지만, 가설이 틀렸을 경우 거기에 쏟아부은 시간과 돈과 노력은 모두 허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실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가설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게 만들고, 그 가운데 몇몇 과학자들은 부정한 방법의 유혹에 끌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가능성이 높은 가설을 세워 나가면 된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되면 늘 뻔한 연구밖에 할 수가 없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과학자들이 실패한 실험 결과도 출판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2002년에 ‘저널 오브 네거티브 리절츠 인 바이오메디신(Journal of Negative Results in Biomedicine)’이라는 학술지를 만들었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는 우스갯소리인 줄 알았지만 이제는 이 학술지의 논문이 꽤 많이 인용되고 또한 인정도 받고 있다. 실패한 연구에서도 얻을 것이 있음을 깨닫게 하는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어느 학자의 연구 조작을 규명하려면 오직 전문가들의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동원된 조사에서만 제대로 판단될 수 있다. 그 과정에 투입되는 인력과 돈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비용의 일부분만이라도 떼내 조작의 유혹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투자하면 어떨까. 실패한 연구에도 큰 박수를 보내주면서 말이다. 무수한 실패를 경험한 연구자들이 그 실패를 딛고 마침내 노벨상까지 받는 모습을 보고 싶다.



편도훈 경북대 미생물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바이러스학과 종양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지냈다. 미국 암연구 학회와 바이러스학회 등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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