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다수공급자 계약’ 연결 통로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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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다수공급자 계약(MAS: Multiple Award Schedule)은 다수의 물품 공급자를 선정해 수요기관의 선택권을 높이는 제도로 미국 연방정부에서 처음 도입됐다. 기존의 최저가 1인 낙찰자 선정 방식이 물품의 다양성 부족, 품질 저하 등의 문제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공공수요 물자는 철근 등 대량 건설자재를 제외하곤 대부분 조달청이 운용하고 있는 전자쇼핑몰을 통해 조달된다. 과거에는 경쟁을 통해 단일 브랜드만 공급됐으나 MAS 제도는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계약할 수 있어 중소기업의 공공시장 진입을 용이하게 하고 소비자인 수요기관의 선택폭도 넓힐 수 있다. 소비자의 권리를 중시하는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 일찍부터 활용되고 있다.

 5년 가까이 이 제도를 운영해본 한국 입장에선 과거를 되돌아보고 도약(take off)을 위해 꼼꼼하게 재점검해야 할 상황이다. 그동안 MAS제도 운영 과정을 분석해 보면 적어도 도입 취지는 충분히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우선 수요기관의 편의 측면에서는 성공작이다. 공공기관이 필요로 할 경우 대부분 한 달 이내에 물품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조달기간을 크게 단축시켰기 때문이다. 기존의 1인 공급자 제도 아래에서는 규격과 품질의 다양성 측면이 전혀 고려될 수 없다는 문제점도 해결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조달물자에 대한 수요기관 만족도가 크게 개선된 것으로 드러났다.

 납품업체들은 MAS 프로그램에 참여할 경우 자사 물품의 상품 정보가 종합쇼핑몰을 통해 상세히 제공되기 때문에 마케팅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매출 신장에 큰 도움을 받는다. 중소기업 제품의 경우 종전에는 건설업체의 하도급으로 수주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공공기관에 직접 납품함으로써 적정 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MAS제도 시행 첫해인 2005년 공급실적이 6000개 규격에 9175억원에 불과했으나 이후 매년 급신장을 보여 지난해에는 30만 규격에 6조700억원에 이르고 있다. 이는 지난해 조달청 물품공급 규모 18조원의 34%에 달한다. 이 제도에 참여하는 업체 수도 4200여 개로 그중에서 중소기업이 98%를 차지했다.

 하지만 개선해야 할 점도 드러나고 있다. MAS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하는 업체가 MAS계약업무 절차와 필요서류 작성에 많은 시간과 인력을 투입, 막상 조달청에 가면 계약이 밀려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조달청 입장에서는 해당 부서 정원을 최대한 늘려 40명이 MAS 업무에 종사하고 있으나 연간 1인당 500건에 이르는 계약 업무를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무작정 공무원 정원을 늘릴 수도 없는 실정이므로 차선책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테면 조달청과 공급업체 사이에 완충(Mitigator) 역할을 할 수 있는 단체가 다수공급자계약 업무 절차와 복잡한 서류 작성 문제를 해결해주면 작은 정부 실현에도 도움이 된다. 업체도 복잡한 업무 부담에서 벗어나 본연의 기업 활동에 주력할 수 있다. 또 업계와 조달청 간 공식적인 대화 채널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비록 외국에서 시작된 것이라도 우리 손으로 세계 최고를 만드는 저력을 갖고 있다. 반도체, 철강, 조선 등의 제품들이 그렇다. MAS도 외국에서 도입된 5년생 제도지만 조달청과 업체의 연결통로를 보강해 우리 토양에 맞는 세계 최고의 제도로 정착됐으면 한다.

신건철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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