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서 못 펼친 ‘끼’ 남한서 맘껏 발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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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평양예술단이 19일 서울 도봉구 도봉동 노인복지센터에서 인형춤을 추고 있다. [안성식 기자]

“그 보고 싶은 고향의 봄, 독창과 무용으로 보시겠습네다.”

 19일 오전 서울 도봉동 노인복지센터. 북한 말투의 낭랑한 목소리가 200여 명의 어르신이 모인 강당에 울려퍼졌다. 분홍색 드레스 차림의 사회자 말이 끝나자마자 “간드러진다 간드러져”라는 탄성이 나온다. 코믹배우가 등장해 “남한에 와서 가글액을 물로 알고 마셨다”고 말하자 폭소가 터졌다. “북에 계신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말에는 장내가 숙연해진다.

 1시간여 동안 남쪽 어르신을 웃고 울린 이들은 평양예술단 단원들이다. 북한의 만수대예술단·평양국립민속예술단 등에서 활동한 새터민 20여 명이 예술단의 주축이다. 2005년 결성한 뒤 전국을 다니며 공연하고 있다.

 “북한 공연 예술은 장르의 구분이 없습니다. 노래·춤·만담·악기가 공연에 다 있는 종합예술이지요.” 김신옥(46) 단장은 ‘북한 스타일’을 최대한 살려 공연한다고 말했다. 가성 대신 또렷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북에서 추던 춤을 그대로 춘다.

 남북 공연의 내용에는 차이가 많다. 북한에서의 공연은 김정일을 찬양하는 체제 선전 일색이다. 함경북도 출신 코믹배우 조현정(51)씨는 “북에서는 코믹하게 묘사해서는 안 되는 것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평양예술단은 공연 중간에 트로트 ‘자기야’를 부르며 사랑·자유 등을 주제로 내세울 때가 많다. 만담의 소재도 새터민이 겪는 ‘대한민국 좌충우돌기’ 등이다. 북한 표준말로 알려진 평안북도 사투리 ‘~했습네까’를 일부러 많이 섞어 쓴다.

 한국에 와서 무용수의 꿈을 이룬 단원도 있다. 2008년 한국에 온 한성희(38)씨는 다섯 살 때부터 예술체조를 배웠지만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해 북한에서 예술단에 들어가지 못했다. 한씨는 “피복공장에서 일하며 공장 기동대로 노래를 부르긴 했지만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어 늘 답답했다”며 “한국에 와서 20년 만에 꿈을 이뤘고, 맘먹는 대로 살 수 있어 행복하다”며 미소 지었다.

 예술단은 봄·가을에 바쁘다. 대부분의 공연(연간 130회)이 이때 몰린다. 공연당 10개가 넘는 프로그램을 선보이다 보니 단원들의 트렁크에는 색색의 무대의상이 빼곡히 차 있다. 올해 1월 노동고용부로부터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아 인건비(1인당 월 93만7000원)와 연간 사업개발비(1000만원)를 3년간 지원받아 숨통이 트였다. 북에 두고 온 가족 앞에서 공연할 수 있다는 희망도 그만큼 커졌다.

 “우리가 남에서 자꾸 공연해 시민들이 북한의 문화에 익숙해지면 나중에 남북이 만나도 서먹하지 않겠지요.” 김 단장은 공연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글=한은화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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